회사정에 행봉대인(幸逢大人)하고
옥문관에 적거노재상(謫居老宰相)하다
각설, 이때에 충렬은 모친을 잃고 물에 빠져 살길이 없었더니 문득 두 발이 닿거늘 자세히 보고 살피어보니 물 속에 큰 바위라. 그 위에 올라앉아 하늘을 우러러 어미를 찾더니 간데없고 사면을 돌아보니 청산은 은은하고 다만 들리느니 물소리뿐이로다. 강천에 낭자한 원숭이 소리 삼경에 슬피 우니 충렬이 통곡하며 섰더니, 이때에 남경 장사들이 재물을 많이 싣고 북경(北京)으로 떠나갈 제 회수에 배를 놓아 범범중류 내려가더니 처량한 울음소리 풍편에 들리거늘 선인 등이 고이하여 배를 바삐 저어 우는 곳을 찾아가니 과연 일 동자(一童子) 물에서 슬피 울거늘 급히 건져 주중(舟中)에 놓고 연고를 물은즉,
“해상에서 수적을 만나 어미를 잃고 우나이다.”
선인 등이 비감하여 물가에 내려놓고 갈 데로 가라 하며 배를 띄워 북경으로 행하더라.
충렬이 선인을 이별하고 정처없이 다니다가 촌촌이 걸식하며 곳곳이 차숙(借宿)할 제, 조동모서(朝東募西)하니 추풍낙엽이요, 거래무종적(去來無蹤迹)하니 청천(靑天)에 부운(浮雲)이라. 얼굴이 치폐(致斃)하고 행색이 가련하다. 흉중(胸中)에 대장성(大將星)은 때 속에 묻혀 있고, 배상(背上)에 삼태성(三台星)은 헌 옷 속에 묻혔으니 활달한 기남자(奇男子)가 도리어 걸인(乞人)이라. 담만 쌓던 부열(傅說)이도 무정(武丁)을 만나 있고, 밭만 갈던 이윤(伊尹)이도 은왕(殷王) 성탕(成湯) 만나 있고, 위수(渭水)에 여상(呂尙)이도 주 문왕(周文王) 만났건만 유수(流水)같이 가는 광음 훌훌히 흘러가니 충렬의 고운 연광 십사 세에 당한지라. 천지로 집을 삼고 사해에 밥을 부쳐 도로에 개걸(丐乞)타가 한곳에 다다르니 이 땅은 초국(楚國)이라. 영릉을 지나다가 장사(長沙)를 바라보고 한 물가에 다다르니 창망한 빈 물가에 슬픈 원숭이 소리로다. 백사장 세우중(細雨中)에 백구(白鷗)는 비거비래(飛去飛來)뿐이로다. 후면을 돌아보니 녹죽(綠竹) 창송(蒼松) 우거지고 적막한 옛 정자 풍랑 속에 보이거늘 그곳에 올라가니, 이 물은 멱라수(汨羅水)요 이 정자는 회사정이라 하는 정자라. 유 주부가 글을 쓰고 물에 빠져 죽고자 하던 곳이라. 마음이 절로 비감하여 정자에 올라가 사면을 살펴보니, 제일은 굴 삼려(屈三閭)의 행장(行狀)을 써 붙이고 그 밑에 만고 문장 풍월이며 행인(行人) 과객(過客) 노정기(路程記)를 사면에 붙였더라.
동벽상에 새로 두 줄 글이 있거늘 그 글을 보니 모년 모월 모일에 남경 유 주부는 간신의 폐를 보고 연경으로 적거하다가 멱라수에 빠져 죽노라 하였거늘 충렬이 그 글을 보고 정상(亭上)에 거꾸러져 방성통곡(放聲痛哭) 왈,
“우리 부친이 연경으로 갔는 줄만 알았더니 이 물에 빠졌도다. 나 혼자 살아나서 세상에 무엇하리. 회수에 모친 잃고 멱라수에 부친 잃었으니 하면목(何面目)으로 세상을 살아날꼬. 나도 함께 빠지리라.”
하고 물가에 내려가니 충렬이 울음소리 용궁(龍宮)에 사무쳤는지라. 천신이 무심할까.
이때에 영릉 땅에서 사는 강희주라 하는 재상이 있으되 소년 등과(登科)하야 승상 벼슬하더니 간신의 참소(讒訴)를 만나 퇴사(退仕)하야 고향에 돌아왔으나, 일단 충심이 국가를 잊지 못하야 매양 천자 오결(誤決)하는 일이 있으면 상소하여 구완하니 조정이 그 직간(直諫)을 꺼려하되 그 중에 정한담과 최일귀가 가장 미워하더니 마침 본부에 갔다가 회로(回路)에 우편 주점(酒店)에서 자더니 비몽간(非夢間)에 오색 구름이 멱라수에 어리었는데 청룡(靑龍)이 물 속에 빠지려 하며 하늘을 향하여 무수히 통곡하며 백사장에 배회(徘徊)하거늘 내념(內念)에 괴이하여 날새기를 기다리더니 계명성(鷄鳴聲)이 나며 날이 장차 밝거늘 멱라수에 바삐 오니 과연 어떠한 동자 물가에 앉아 울거늘 급히 달려들어 그 아이 손을 잡고 회사정에 올라와 자세히 물어 왈,
“너는 어떠한 아이로서 어데로 가며 무슨 연고로 이곳에 와 우는다?”
충렬이 울음을 그치고 대왈,
“소자는 남경 동성문 내에 사는 정언주부 유공의 아들이옵더니 부친께옵서 간신의 참소를 만나 연경으로 적거하시다가 이 물에 빠져 죽은 종적이 회사정에 있는 고로 소자도 이 물에 빠져 죽고자 하옵니다.”
강 승상이 이 말을 듣고 대경실색(大驚失色)하여 왈,
“이것이 웬 말이냐. 근년에 노병(老病)으로 황성을 못 갔더니 그다지 인사 변하여 이런 변이 있단 말인가. 유 주부는 일국에 충신이라 동조(同朝)에 벼슬하다가 나는 연만(年晩)하기로 고향으로 돌아왔더니 유 주부 이런 줄을 몽중에나 생각하였으랴. 의외(意外)라 왕사(往事)는 물론(勿論)하고 나를 따라가자.”
하니 충렬이 왈,
“대인은 소자를 생각하와 가자 하옵시나 소자는 천지간 불효자라 살아서 무엇하며 또한 모친이 변양 회수중에 죽삽고, 부친은 이 물가에 죽었사오니 소자 혼자 살 마음이 없나이다.”
승상이 달래어 왈,
“부모가 구몰(俱沒)한데 너조차 죽는단 말인가. 세상 사람들이 자식 낳아서 좋다 하는 것이 후사(後嗣)를 끊기지 아니함이라. 너조차 죽게 되면 유 주부 사당에 일점향화(一點香火) 있을쏘냐. 잔말말고 따라가자.”
하시니 충렬이 하릴없어 강 승상을 따라가니 영릉땅 월계촌이라. 인가가 즐비한데 벽제(辟除) 소리 요란하고 고루거각(高樓巨閣)이 반공에 솟았는데 수호(繡戶) 문창(紋窓)이 있고 주륜취개(朱輪翠蓋) 왕래한대 인물이 준수(俊秀)하더라.
승상이 충렬을 외당에 두고 안으로 들어가 부인 소씨더러 충렬의 말을 낱낱이 하니 소씨 이 말을 듣고 충렬을 청하여 손을 잡고 낙루하며 왈,
“네가 동성문 내 사는 장 부인의 아들이냐? 부인이 연만토록 자식이 없음에 날과 같이 매일 한탄하더니 장 부인은 어찌하여 저러한 아들을 두었다가 영화를 다 못 보고 황천객이 되었으니 세상사 허망하다. 간신의 해를 입어 충신이 다 죽으니 나라인들 무사하랴. 다른 데 가지 말고 내 집에 있으라.”
하시니 충렬이 배사(拜謝)하고 외당으로 나오니라.
이때 강 승상이 아들은 없고 다만 일녀(一女)를 두었는지라. 부인 소씨 여아를 낳을 적에 일원 선녀 오운(五雲)을 타고 내려와 소씨를 대하여 왈,
“소녀는 옥황 선녀옵더니 연분(緣分)이 자미원 대장성과 한가지로 있다가 소녀를 강문(降門)에 보냄에 왔사오니 부인은 애휼하옵소서.”
하거늘 부인이 혼미(昏迷)중에 여아를 탄생하니 용모 비범하고 거동이 단정하여 시서(詩書) 음률(音律)을 무불통지(無不通知)하니 여중군자(女中君子)요 총명(聰明) 지혜 무상이라. 부모 사랑하야 택서(擇婿)하기를 염려하더니 천행으로 충렬을 데려다가 외당(外堂)에 거처하고 자식같이 길러낼 제 충렬의 상(相)을 보니, 구불가언(口不可言)이로다. 부귀(富貴) 작록(爵祿)은 인간에 무쌍이요 영웅준걸(英雄俊傑)은 만고 제일이라. 승상이 대희하야 내당에 들어가 부인더러 혼사를 의논하니 부인 대희하여 왈,
“내 마음도 충렬을 사랑하더니 승상의 말이 또한 그러할진대 불수다언(不數多言)하고 혼사를 지내옵소서.”
승상이 밖에 나와 충렬의 손을 잡고,
“네게 대사(大事)를 진탁(眞託)할 말이 있다. 노부(老父) 말년에 무남독녀(無男獨女)를 두었더니 금일로 볼진대 너의 천정(天定)이 적실하니 이제 백년고락(百年苦樂)을 네게 부치노라.”
하신대 충렬이 궤좌하여 낙루하며 여쭈오되,
“소자 같은 잔명을 구원하여 슬하에 두고자 하옵시니 감사무지(感謝無地)로되, 다만 통박(痛迫)하온 일이 흉중에 사무쳤나이다. 소자 박복하와 양친이 죽은 줄도 모르고 취처(娶妻)하오면 인간에 죄인이라 글로 한이로소이다.”
승상이 그 말 듣고 비감하여 충렬의 손을 잡고 왈,
“그도 일시 권도(權道)라. 너의 집 시조공(始祖公)도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장문(張門)이 취처하였다가 성군(聖君)을 만나 개국공신(開國功臣)되었으니 조금도 설워 말라.”
하시고 즉시 택일하여 길례(吉禮)를 행하니 신랑 신부의 아름다운 것이 선인(仙人) 적강(謫降) 적실하다. 예를 파하고 방으로 들어가 사면을 살펴보니 빛나고 빛난 것이 일구난설(一口難說)이요. 일필난기(一筆難記)로다. 동방(洞房) 화촉 깊은 밤에 신랑 신부 평생 연분 맺었으니 그 사랑한 말은 어찌 다 측량하며 어찌 다 기록하리.
밤을 지낸 후에 이튿날 승상 양주(兩主)께 뵈온대 승상 부부 즐거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더라.
이러구러 세월이 여류(如流)하여 유생의 나이 십오 세라. 이때에 승상이 현서(賢婿)를 얻고 말년에 근심이 없으나 다만 유 주부 간신의 해를 보아 멱라수에 죽음을 생각하니 분심이 직발(直發)하여 나라에 글을 올려 유 주부를 설원(雪冤)코자 하여 즉시 황성을 가려 하거늘 유생이 만류(挽留)하여 왈,
“대인의 말씀은 감격하오나 간신이 만조(滿朝)하와 국권(國權)을 아셨으니 천자 상소를 듣지 아니할까 하나이다.”
승상이 불청(不聽)하고 급히 행장을 차려 황성에 올라가, 퇴재상 권공달의 집에 사처(私處)를 정하고 상소를 지어 승지(承旨)를 불러 천자께 올리라 하더라.
그 상소에 하였으되,
전승상(前丞相) 강희주는 근돈수백배(謹頓首百拜)하옵고 상소우폐하전(上疏于陛下前)하나이다. 황공하오나 충신은 국가지본심(國家之本心)이요, 간신을 물리치고 충신을 내세워 인정(仁政)을 행하시고 덕을 베푸사 창생(蒼生)을 살피시면 소신(小臣) 같은 병골(病骨)이라도 태고순풍(太古舜風) 다시 만나 청산백골(靑山白骨)이나 좋은 땅에 묻힐까 하였더니 간신의 말을 듣삽고 주부 유심을 연경으로 원찬(遠竄)하시니 선인(先人)의 하신 말씀 인군과 신하 보기를 초개(草芥)같이 하여 밖으로 충신의 입을 막고 간신의 악을 받아 국권(國權)을 앗았으니 어찌 아니 한심하오리까. 왕망(王莽)이 섭정(攝政)함에 왕실(王室)이 미약하고 회왕(懷王)이 위태함에 항적(項籍)이 죽였으니 복원(伏願) 황상은 깊이 생각하옵소서 신이 비록 죽는 날이라도 사은(思恩) 해(海) 같사오니 복원 황상은 충신 유심을 즉시 방송(放送)하와 폐하를 돕게 하옵소서. 주달하올 말씀 무궁하오나 황공하와 그치나이다.
하였거늘 천자 상소를 보시고 대로(大怒)하여 조정에 내리어 보라 하신대, 이때 정한담 최일귀, 강희주의 상소를 보고 대분(大忿)하여 즉시 궐내(闕內)에 들어가 여쭈오되,
“퇴신(退臣) 강희주의 상소를 보오니 대역부도(大逆不道)라. 충신을 왕망에게 비하여 폐하를 죽인다 하오니 이놈을 역률(逆律)로 다스리어 능지처참(陵遲處斬)하옵고 일변 저의 삼족(三族)을 멸하여지이다.”
천자 허락한대, 한담이 즉시 승상부에 나와 나졸을 재촉하여 강희주를 나입(拿入)하라 하니 나졸이 청령(廳令)하고 권공달의 집에 가 강희주를 철망으로 결박하여 잡아갈 제, 이때 강희주 삼족을 멸하라 하는 말을 듣고 유생이 또한 연좌(連坐)할까 하여 급히 편지를 만들어 집으로 보내고 철망에 싸이어 금부(禁府)로 들어갈 제, 백발이 소소(小少)하니 피눈물이 반반(斑斑)하여,
“충신을 구완타가 장안 시상(市上)에 무주고혼(無主孤魂) 되단 말인가. 죽은 혼백이라도 용봉(龍逢) 비간(比干)을 벗하여 천추(千秋)에 영화(榮華) 될 것이요. 간신 정한담은 찬역(簒逆)하려 하고 충신을 무함(誣陷)하여 원혼(怨魂)이 되게 하니 살아도 부끄럽지 아니하랴.”
무수히 호원(呼願)하고 금부로 들어가니, 이때 정한담이 승상부 높이 앉아 승상을 나입하여 계하(階下)에 꿇리고 수죄(數罪)하는 말이,
“네 전일에 자칭 충신이라 하더니 충신도 역적이 된단 말인가?”
승상이 눈을 부릅뜨고 한담을 보며 왈,
“관숙(管叔) 채숙(蔡叔)이 주공(周公)더러 역적이라 아니하였느냐. 한대 양화(陽貨)가 공자(孔子)더러 소인(小人)이라 함이 어제들은 듯 하노라.”
하니 한담이 대로하여 좌우 나졸을 재촉하여 수레 위에 높이 싣고 장안 시상에 나올 제, 이때에 천자 황태후(皇太后)는 강 승상의 고모(姑母)라, 승상 죽인단 말을 듣고 급히 천자께 들어가 낙루하여 왈,
“들으니 강희주를 무슨 죄로 죽이느냐? 친정 골육이 다만 늙은 강희주뿐이라. 설사 죽일 죄가 있다 하여도 날로 보아 죽이지 말고 원방(遠方)에 유찬(流竄)하기를 바라노라.”
천자 애연(哀然)하여 즉시 한담을 불러.
“죽이지 말고 유심 일체(一體)로 옥문관에 원찬하라.”
하시니 한담이 청명(聽命)하고 마지못하여 옥문관에 원찬하고, 강희주의 일족(一族)을 다 잡아다가 궁노비(宮奴碑)를 공입(貢入)하라 하고, 일변 나졸을 명초(命招)하여 영릉으로 간지라.
이때 유생이 강희주 승상이 황성 가신 후로 주야 염려하더니 뜻밖에 강 승상의 서간이 왔거늘 급히 개탁하니 하였으되,
오호(嗚呼)라 노부는 전생에 죄 중하야 슬하에 자식 없고 다만 일녀를 두었더니 천행으로 그대를만나 부귀영화를 보려 하고 여아(女兒)의 평생을 그대에게 부쳤더니 가운(家運)이 그러한지 조물(造物)이 시기한지 충신을 구완타가 만리 변방에 생사를 모르나니 이러한 변이 또 있느냐. 노부는 연만하여 풀 끝에 짐나고 여년(餘年)이 불원(不遠)하여 이제 죽어도 섧지 아니하거니와 여아의 일생을 생각하니 가련하고 불쌍한지라. 천생연분(天生緣分)으로 그대를 만나 신정(新情)이 미흡(未洽)하여 이 지경이 되었으니 형용이 어찌 될지 가슴이 답답하다. 그러하나 노부는 역률(逆律)로 잡히어 철망을 씌워 옥문관으로 원찬하고, 나의 일족은 잡아다가 궁비(宮婢) 속공(屬公)하라 하고 나졸이 내려가니 그대 급히 집을 떠나 환을 면하라. 만일 신정을 못 잊어 도망치 아니하면 우리 두 집의 일점혈육이 청춘고혼(靑春孤魂)이 될 것이니 부디 도망하였다가 일후에 귀히 되거든 내 자식을 찾아 버리지 말고 백년해로하여 나 죽은 날에 박주(薄酒) 일배(一杯)라도 향화(香火)를 피운 후에 술상은 일생 기르던 충렬의 손에 많이 흠향하고 가라 하면 구천의 여혼(餘魂)이라도 일배주(一杯酒)를 만반주육(滿盤酒肉)으로 먹고 청산에 썩은 뼈도 춘풍을 다시 만나 그 은혜를 갚으리라.
하였거늘 충렬이 보기를 다함에 낭자 방에 들어가 편지를 뵈이며,
“전생에 명이 기박(奇薄)하여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천지로 집을 삼고 사해로 밥을 부쳐 부운(浮雲)같이 다니더니 천행으로 대인을 만나 낭자와 백년언약을 맺었더니 일 년이 다 못하여 이런 변이 있으니 어찌 아니 망극하리요.”
입었던 고의(袴衣) 한삼(汗衫)을 벗어 글 두 귀를 써 주며,
“타일에 보사이다.”
낭자 이 말을 듣고 대경실색하여 유생의 옷을 잡고 방성대곡하여 왈,
“노부(老父) 무슨 죄로 만리 호지(胡地)에 간다 하며, 청춘 소첩 무슨 죄로 박명한고, 날 같은 여자는 생각 말고 급히 환을 면하소서.”
홍상(紅裳) 한 폭을 떼어 글 두 귀를 지어 주며,
“급히 나가소서.”
하거늘 유생이 글을 받아 금낭 속에 넌짓 넣고 곡성(哭聲)으로 해를 지내니라.
낭자 울며 왈,
“가군이 이제 가면 어느 날 다시 보며 어명(御命)이 지중(至重)하여 궁비 속공하게 되면 황천에 가 다시 볼까 하나이다.”
충렬이 슬피 울며 하직하고 가는 정이 해하성(垓下城) 추야월에 우미인(虞美人)을 이별한 듯하더라.
행장을 급히 차려 서천을 바라고 정처없이 가더니 신세를 생각함에 속절없는 눈물이 비오는 듯이 떨어지며 장장천지(長長天地) 길고 긴 길에 앞이 막혀 못 가겠다. 서천 구름을 바라보고 한없이 가더라.
소부인은 청수에 투사(投死)하고
강 낭자는 창가(娼家)에 수절(守節)하다
각설, 이때 부인과 낭자 유생을 이별하고 일가가 망극하여 울음소리 떠나지 아니하더라. 불과 사오 일에 금부도사 내려와 월계촌에 달려들어 소 부인과 낭자를 잡아내어 수레 위에 싣고 군사를 재촉하여 황성으로 올라가며 일변 집을 헐어 못을 파고 가니, 가련하다 강 승상이 세대로 있던 집을 일조에 못을 파니 집오리만 둥둥 떴다.
소씨와 낭자 속절없이 잡혀 올라갈 제 청수에 다다르니 일모서산(日暮西山)이라. 객실에 들어 잘 제, 이때 금부나졸 중에 장한이라 하는 군사 전일 강 승상 벼슬할 때에 장한의 부친이 승상부 서리(胥吏)로서 득죄하여 거의 죽게 되었더니 강 승상이 구하여 살린 고로 장한의 부자 그 은혜를 주야(晝夜) 생각하더니 이때를 당함에 불쌍함을 이기지 못하여 다른 군사 모르게 슬피 울더니, 그날 밤 삼경에 다른 군사 다 잠을 깊이 들었거늘 가만히 부인 자는 방문 앞에 나가니, 이때 부인과 낭자 서로 붙들고 울며 잠을 아니 자거늘 문 밖에 기침하고 부인을 부른대, 부인이 놀래어 문을 열고 보니 장한이 복지(伏地)하여 가만히 여쭈오되,
“소인은 금부 나장(羅將)이옵더니 전일 대감 벼슬할 때에 소인의 아비 나라에 득죄하여 죽게 되었삽더니 대감이 살리시기로 그 은혜 골수(骨髓)에 사무치어 갚기를 바라더니 이때를 당하여 소인이 어찌 무심하오리까. 바라옵건대 부인은 너무 염려 마옵소서. 이날 밤에 명을 도망하오시면 그 뒤는 소인이 당할 것이니 조금도 염려 마옵시고 도망하여 살기를 바라소서.”
부인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금 풀리어 낭자를 데리고 장한을 따라 주점 밖에 나서니 밤이 이미 삼경이라 인적이 고요하거늘 동산을 넘어 십 리를 가니 청수에 이르러 장한이 하직하고 왈,
“부인과 낭자는 이 물가에 빠져 죽은 표를 하고 가옵시면 후환이 없을 것이니 부디 살아나 후사를 보사이다.”
하고 가거늘 이때 부인이 낭자의 신세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하여 이제 비록 도망하여 왔으나 청춘 여자를 데리고 어디로 가 살며 혹 살아난들 승상과 현서를 이별하고 살아서 무엇하리. 차라리 이 물에 빠져 죽으리라 하고, 낭자를 속여 뒤보는 체하고 급히 청수에 가 신을 벗어 물가에 놓고 청강녹수(淸江綠水) 깊은 물에 뛰어드니 가련하다 강 승상의 부인 백옥 같은 고운 몸이 어복(魚腹)중에 장사(葬事)하니 어찌 아니 가련하랴.
이때 낭자 모친을 기다리더니 종시 오지 아니하거늘 급히 나서 살펴보니 사면에 인적이 없는지라. 마음이 답답하여 모친을 부르며 청수 가에 나와 보니 모친이 신을 벗어 물가에 놓고 간데없거늘 발을 구르며 또한 신을 벗어 물가에 놓고 빠져 죽으려 하더니, 이때는 밤 오경이라 동방이 차차 밝아오며, 마침 영릉골 관비(官婢) 한 년이 외촌(外村)에 갔다가 회로(回路)에 청수 가에 다다르니 어떠한 여자 물가에서 통곡하며 물에 빠져 죽고자 하거늘 급히 쫓아와 낭자를 붙들어 물가에 앉히고 연고를 물은 후에 제 집으로 가자 하니 낭자 한사(限死)하고 죽으려 하거늘 관비 만단개유(萬端改諭)하여 데리고 와서 수양딸을 정한 후에 자색(姿色)과 태도를 살펴보니 천상선녀 같은지라. 이 고을 동리마다 수청(守廳)을 드렸으면 천금재산(千金財産)을 부러워하며 만량태수(萬兩太守)를 원할쏘냐. 만 가지로 달래어 다른 데로 못 가게 하더라.
각설, 이때에 유생이 장 승상의 집을 떠나서 서천을 바라보고 정처없이 가며 신세를 생각하니, 속절없고 하릴없다. 이제는 무가내하(無可奈何)로다. 산중에 들어가 삭발위승(削髮爲僧)하여 훗길이나 닦으리라 하고 청산(靑山)을 바라고 종일토록 가더니 한곳에 다다르니, 앞에 큰 산이 있으되 천봉만학(千峰萬壑)이 충천(衝天)한 중에 오색 구름이 구리봉에 떠 있고 각색 화초 만발한지라. 장차 신령한 산이라 하고 찾아 들어가니 경개(景槪) 절승(絶勝)하고, 풍경(風景)이 쇄락(灑落)하다. 산행(山行) 육칠 리에 들리나니 물소리 잔잔하고 보이나니 청산만 울울한대, 청림을 더우잡고 석양에 올라가니, 수양천만사(垂楊千萬絲)는 춘풍을 못 이기어 동구에 흐늘거려 늘어지며, 녹죽(綠竹) 청송(靑松)은 우거진 가지에 백조(白鳥) 춘정(春情) 다투었다. 층층한 화계(花溪) 상에는 앵무 공작 넘노는데, 창천(蒼天)에 걸린 폭포 층암절벽 치는 소리 한산사(寒山寺) 쇠북 소리 객선(客船)에 이르는 듯 반공(半空)에 솟은 암석, 청송 속에 있는 거동 산수(山水) 그림 팔간 병풍 둘렀는 듯, 산중에 있는 경개 어찌 다 기록하리.
춘풍이 언듯하며 경쇠 소리 들리거늘 차츰차츰 들어가니 오색구름 속에 단청(丹靑)하고 휘황한 고루거각이 즐비(櫛比)하여, 일주문(一柱門0을 바라보니 황금대자(黃金大字)로 ‘서해 광덕산 백룡사’라 뚜렷이 붙였거늘, 산문으로 들어가니 일원 대승(大僧)이 나오거늘 그 중의 거동을 보니, 소소한 두 눈썹은 두 눈을 덮어 있고, 백변(白邊)같이 뚜렷한 귀는 두 어깨에 늘어졌으니 청수(淸秀)한 골격과 은은한 정신은 범승이 아닐네라.
백팔염주, 육환장을 짚고 흑포장삼의 떨어진 송낙 쓰고 나오며, 유생을 보고 왈,
“소승이 연만하기로 유 상공 오시는 행차에 동구 밖에 나가 맞지 못하니 소승의 무례함을 용사(容赦)하옵소서.”
유생이 대경 왈,
“천생(天生)에 팔자 기박하여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정처없이 다니다가 우연히 이곳에 와 대사를 만나오니, 그다지 관대(寬待)하시며 소생의 성을 어찌 아나이까?”
노승이 답왈,
“어제날 남악 형산 화선관이 소승의 절에 왔삽다가 소승더러 부탁하기를 ‘명일 오시(午時)에 남경 동성문 내에 사는 유심의 아들 충렬이가 올 것이니 축객(逐客)말고 대접하라’ 하시기로 소승이 찾아 나옵더니 상공의 복색(服色)을 보오니 남경 사람인 고로 알았나이다.”
유생이 그 말을 듣고 일희일비(一喜一悲)하여 노승을 따라 들어가니 제승(諸僧)들이 합장배례(合掌拜禮)하며 반겨하는지라. 노승의 방에 들어가 석반(夕飯)을 먹은 후에 그 밤을 편히 쉬니 이곳은 선경(仙境)이라. 세상을 모두 잊고 일신이 무양(無恙)한지라.
이 후로는 노승과 한가지로 병서(兵書)도 잠심(潛心)하고 불경도 학론(學論)하니라. 이때에 대명천지무과객(大明天地無過客)이요 광덕산중유발승(廣德山中有髮僧)이라, 본신이 천상(天上) 사람으로 생불을 만났으니 기이한 술법을 가르치고 천지 일월성신(日月星辰)이며 천하명산 신령들이 모두 다 합력(合力)하니 그 재주와 영민(英敏)함을 뉘라서 당하리요 주야로 공부하더라.
천자는 기병쌍궐하(起兵雙闕下)하고
간신은 투창적진중(投槍敵陣中)하다
각설, 이때에 남경 조신(朝臣) 중에 도총대장 정한담과 병부상서 최일귀, 일상 꺼리던 유심과 강희주를 만리 밖에 원찬하고, 조정 백관(百官)을 처결하여 천자를 도모(圖謀)코자 하여 신기한 병법과 둔갑장신지술(遁甲藏身之術)과 승천입지지책(昇天入地之策)과 변화위신지법(變化爲神之法)이며 악화두수지술(握火杜水之術)을 통달하게 배웠으니, 이놈도 본신이 천상 익성으로 인간 사람은 당할 이 없더라.
일국(一國) 만인지상(萬人之上)이라, 소장지변(蕭墻之變)이 있었으니 나라가 어찌 무사하랴.
이때는 영종황제 즉위 삼 년 춘정월이라. 국운(國運)이 불행하며 남흉노(南匈奴) 선우(單于)며 북적(北狄)과 동심(同心)하여 천자를 도모하려 하고 서천 삼십육 도 군장(郡長)과 남만(南蠻) 가달이며, 토번(吐藩) 오국이 합세하여 장사(壯士) 팔천여 원(八千餘員)과 정병(精兵) 오백만으로 주야 행군하여 진남관에 다달아 격서(檄書)를 남경에 보내고 진남관에 웅거한지라.
이때에 백성들이 난리를 보지 못하였다가 뜻밖에 난을 만나니 농상낙야(籠床落野)하여 산지사방(散之四方) 피난하니 적연(積燃)도 탕진(蕩盡)하고 창곡(倉穀)도 진갈(盡竭)한지라. 하늘이 정한 운수 그리 않고 어이하리.
이때 천자 정월 망일(望日)에 호산대에 올라 망월(望月)하고 환궁(還宮)하여 대연(大宴)을 배설(配設)하고 상하동락(上下同樂) 즐기더니, 뜻밖에 진남관 수문장(守門將)이 장계(狀啓)를 올렸거늘 급히 개탁하니 하였으되,
“남적이 강성하여 오국과 합력하여 진남과 평사뜰 백리 내에 가득하옵고 백성을 노략하며 황성을 치랴 하오니 바삐 군병을 보내어 도적을 막으소서.”
하였거늘 천자 대경하사 제신(諸臣)을 모아 의논할새 정한담과 최일귀 이 말을 듣고 대희하여 급히 별당에 들어가 도사를 보고 밖에 도적이 일어났단 말을 하고 대사를 부르니, 도사 문에 나서 천기를 살핀 후에,
“시재시재(時哉時哉)로다. 신기한 영웅이 황성에 있는가 하였더니 이제 죽었으며, 때맞추어 도적이 일어났으니 이는 그대 천자(天子)할 수라. 급격물실(急擊勿失)하라.”
하니 한담이 대희하야 일귀로 더불어 갑주(甲冑)를 갖추고 궐문으로 들어가는지라.
이때 천자 재신과 방적(防敵)할 꾀를 의논하더니 장안에 바람이 일어나며 일원대장(一員大將)이 계하(階下)에 복지 주왈(伏地奏曰),
“소장 등이 비록 재주 없사오나 한번 나가 남적을 함몰(陷沒)하여 황상의 근심을 덜고 소장의 공을 세워지이다.”
하거늘 모두 보니 신장(身長)이 십여 척이요 면목이 웅장한데, 황금투구에 녹운포(綠雲袍)를 입은 것은 도총대장 정한담이요, 면상이 숯먹 같고 안채(眼彩)가 황홀하며 백금투구에 홍운포(紅雲袍)를 입은 것은 병부상서 최일귀라.
천자 대희하사 양장(兩將)의 손을 잡고 왈,
“경 등의 충성 지략(智略)은 짐이 이미 아는지라 남적을 함몰하여 짐의 근심을 덜게 하라.”
양장이 청령하고 각각 물러나와 정병 오천씩 거느려 행군하여 진남관에 유진(留陣)하고 그날 밤에 군사 한 명만 잠을 깨워 가만히 항서(降書)를 써 주며 또한 편지를 써서 적진(敵陣) 중에 보내고 회답을 기다리는지라.
그 군사 적진에 들어가 적장을 보고 항서를 올린 후에, 또 편지를 드리거늘 적장이 대희하여 즉시 개탁하니 하였으되,
남경 장사(壯士) 정한담 최일귀는 일장서간을 남진(南陳) 대장소(大將所)에 올리나이다. 우리 양인 등이 갈충(竭忠) 진심(盡心)하여 천자를 도와 국가에 유공(有功)하고 백성에게 덕이 있어 지성으로 봉공(奉公)하되 지기(知己)하는 인군을 못 만나 항시 앙앙(怏怏)한 마음이 있는지라 대장부 세상에 다시 어찌 남의 신하 오래 되리요. 남아유방백세(男兒流芳百世)할진대 역당유취만년(亦當遺臭萬年)이라 하였으니 이때를 당하여 어찌 묘계(妙計) 없으리요. 우리 양인을 선봉을 삼으시면 항복할 것이니 그대 뜻이 어떠하뇨? 회답을 보내라.
하였거늘 적장이 그 글을 보고 대희하여 왈,
“우리 등이 남경으로 나올 때 도사 근심하기를 정한담 최일귀를 염려하더니 이제 저희 등이 먼저 항복코저 하니 이는 천우신조(天佑神助)함이라.”
하고 즉시 회답을 써 준대, 군사 급히 본진으로 돌아와 답서를 올리거늘 떼어 보니 하였으되,
그대의 마음이 우리 마음 같은지라. 선봉을 원대로 맡길 것이니 금야에 반가히 보사이다.
하였거늘 정, 최 양장이 갑주를 갖추고 적진에 들어가는지라.
이 적에 중군장이 급히 황성에 올라가 전후수말을 천자에게 고한대, 천자 이 말을 듣고 용상(龍床) 밑에 떨어져 발을 구르며 정한담 최일귀 적장에게 항복하였으니 적진은 범이 날개를 얻은 듯하고 짐은 용이 물을 잃었으니 이제는 하릴없다. 성중에 있는 군사 낱낱이 총독(總督)하고 각도 각읍에 행관(行關)하여 군사와 군량을 준비하고 우승상 조정만으로 도성을 지키고 태자로 중군(中軍)을 정하시고 상(上)이 친히 후군(後軍)이 되어 행군을 재촉하니 군사 십여 만이요 장수 백여 원이라.
행군고(行軍鼓)를 재촉할 제, 전일 길주자사 갔던 이행이 원문(轅門)밖에 복지 주왈,
“소신이 재주 없사오나 이때를 당하여 신자 도리에 어찌 사직(社稷)을 돕지 아니하오리까? 소신으로 선봉을 정하옵소서.”
천자 대희하사 즉시 이행으로 선봉을 삼아 도적을 막을새, 이때 정한담 최일귀 적진에 항복하여 한담이 선봉이 되고 일귀는 중군대장이 되어 급히 황성을 지쳐 들어오며 의기양양하고 호령이 엄숙한데 기치(旗幟) 창검(槍劍)은 팔공산 나무같이 벌려 있고, 투구 갑옷은 한천(寒天)에 일광같이 안채가 쐬이는 듯, 금고함성(金鼓喊聲)은 천지 진동하고 목탁 나팔은 강산이 뒤눕는 듯, 순식간에 들어와 금산성 백리 뜰에 빈틈없이 벌려 서서 내외음양진(內外陰陽陳)을 치고 도사 진중에 망기(望氣)하며 싸움을 재촉하니, 적진 중에서 방포일성(放砲一聲)에 한 장수 내달아 외며 왈,
“명진 중에 천극한 적수(敵手) 있거든 바삐 나와 대적(對敵)하라.‘
하니 명진 중에서 응포(應砲)하고 좌익장(左翼將) 주선우 응성(應聲)하고 다려들어 싸울새, 양진 군사 처음으로 구경하니 항오(行伍)를 차리지 못하여 승부(勝負)를 구경하더니 수합이 못하여 극한의 칼이 번듯하며 주선우 머리 마하(馬下)에 떨어지니, 명진 중으로 좌익장 죽음을 보고 또 한 장수 내달아 원문 밖에 고성(高聲) 왈,
“극한근 가지 말고 최상정의 칼을 받으라.”
하니 극한이 달려들어 함성이 그치고 그 칼이 번듯하며 최상정의 머리 떨어지니, 명진 중에서 우익장 죽음을 보고 왕공열이 응성하고 달려들어 극한과 싸울새 일 합이 못하야 거의 죽게 되었더니, 명진 중에서 팔대장군이 일시에 달려들어 왕공열을 구완하더니, 적진 중에서 명진 팔장이 나옴을 보고 한진이 극한과 합력하여 팔장으로 더불어 싸우더니, 한진은 서편을 치고 극한은 동을 치니 촉처(觸處)에 죽는 군사 그 수를 모를네라. 삼 합이 못하여 극한의 창검 끝에 팔장이 다 죽으니, 이때 태자(太子) 중군에 있다가 팔장 죽음을 보고 불승분심(不勝忿心)하여 말을 타고 진문 밖에 나서며 외워 왈,
“무도한 남적놈아, 천명을 거역하니 죄사무석(罪死無惜)이로다. 너의 진중에 정한담 최일귀 머리를 베어 명진 중에 보내는 자 있으면 옥새(玉璽)를 전하리라.”
하고 극한을 맞아 싸우더니, 선봉장 이황이 이 말을 듣고 달려오며,
“태자는 아직 분을 참으소서. 소장이 잡으리다.”
하고 나는 듯이 들어가 좌수의 칼을 들고 극한의 머리를 베이고, 장창을 들고 한진의 머리를 베어, 두 손에 갈라들고 좌우로 충돌하여 본진으로 돌아오니 적진 중에서 한담이 장막 밖에 나서며 청사마를 채쳐 구척장검(九尺長劍)을 높이 들고 바로 명진을 대칼에 함몰코자 하니, 이때에 먼저 남적 선봉으로 왔던 정문걸이 내달아 한담을 불러 왈,
“대장은 분을 참으소서. 소장이 이황을 잡으리다.”
하고 번창출마하여 싸우더니 일 합이 못하여 문걸의 칼이 진중에 빛나며 이황의 머리 마하에 내려지는지라. 문걸이 칼끝에 꿰어 들고 본진으로 행하다가 도로여 명진 선봉을 지쳐 들어오며,
“명진은 불쌍한 인생을 죽이지 말고 바삐 항복하라.”
하며 순식간에 선봉을 다 베이고 달려들어 중군으로 들어오거늘, 태자 중군을 지키다가 당치 못할 줄 알고 후군과 천자를 모시고 금산성으로 도망한지라.
이때에 문걸이 명진 장사를 씨도 없이 다 죽이고 명제(明帝)를 찾은즉 도망하고 없는지라. 군장 복색을 모두 다 탈취하고 본진으로 돌아오며, 정한담이 바로 달려들어가니 천자 망극하여 옥새를 땅에 놓고 앙천 통곡 왈,
“짐이 불명(不明)하여 선황제 사백 년 왕업을 일조에 정한담에게 잃게 되니 이는 양호유환(養虎遺患)이라. 뉘를 원망하리요 모두 다 짐의 불찰(不察)이라. 황천에 돌아간들 선황제를 어찌 보며 인간에 살았은들 되놈에게 무릎을 어찌 꿇랴.”
하며 금산성이 떠나가게 통곡이 진동하더라.
수문장이 보하되,
“해남 절도사 군병을 거느려 왔나이다.”
천자 대희하여 바삐 입시(入侍)하라 한대, 절도사 군사 십만 병을 거느려 성중에 들어가 천자께 뵈이거늘,
“즉시 절도사로 선봉을 삼아 도적을 막으라.”
하니 절도사 청령하고 성하(城下)에 유진(留陣)하였더니, 이때 한담이 도성으로 들어가 용상에 높이 앉아 백관을 호령하니 만조백관(滿朝百官)이 일조에 항복하더라. 만성인민(滿城人民)이 도적의 밥이 되어 물끓듯하더라.
이 날 한담이 삼군을 재촉하여 금산성을 쳐 파하고 옥새를 앗고자하여 성하에 다다르니 명진 군사 길을 막거늘 정문걸이 필마단창(匹馬單槍)으로 명진을 지쳐 좌우로 충돌하니 일신이 검광 되어 닫는 앞에 장졸의 머리 추풍낙엽이요 호전주퇴(壺顚酒頹)같더라. 순식간에 죽이고 산성 문 밖에 달려들어 성문을 두드리며,
“명제(明帝)야, 옥새를 드리라!”
하는 소리 금산성이 무너지며 강산이 뒤넘는 듯하니 성중에 있는 군사 혼백이 없었으니 그 아니 가련한가.
천자와 조정만이 황황급급하여 북문을 열고 도망하여 암석간에 은신하였더니, 이때 태자 황후와 태후를 모시고 도망하랴 하더니 문걸이 성중에 들어와 천자를 찾다가 도망하고 없음에 황후 태자를 잡아 본진으로 보내고 돌아오니, 정한담이 황후를 결박하여 진 앞에 꿇리고 천자 간 곳을 가르치라 한대, 황후 망극하여 대답지 아니하거늘, 좌우군사 창검을 갈라 들고 옥체를 겨누면서 바른대로 가르치라 하니 황후 황망중에 대답하되,
“이 몸은 계집이라 성중에 묻혀 있다가 불의에 난을 당하여 천자는 밖에 있는 고로 생사존망(生死存亡)을 모르노라.”
한담이 분노하여 황후 태자를 진중에 두어 주려 죽게 하고 용상에 높이 앉아 천자의 일을 행하며 군사를 호령하되,
“명제를 사로잡는 자 있으면 천금상(千金賞)에 만호후(萬戶侯)를 봉하리라.”
하니 군사 청령하고 각 진으로 돌아오니라.
이때 천자 금산성에 도망하여 조정만으로 더불어 산곡 사이에 은신하고 있더니 황태후 적진에 잡혀가 죽이려 하는 말을 듣고 통곡하여 암하(岩下)에 내려져 죽고자 하거늘 조정만이 붙들어 구완하여 천자를 업고 명서원으로 도망하여 갈 제, 천자께 여쭈오대,
“남경이 진탕하였으니 도적 정한담 잡기는 새로이 정문걸 잡을 장수 없으니 이제 산동육국에 청병(請兵)하여 싸우다가 사불여의(事不如意)하거든 옥새를 가지고 소신과 함께 용동수에 빠져 죽사이다.”
천자 옳이 여겨 조서(詔書)를 써 산동육국에 주야로 가 구원병을 청하니, 이때 육국왕이 이 말을 듣고 각각 군사 십만 명과 장수 천여 원을 조발하여 급히 남경 명성원으로 보내니라.
이때 육국에 합세하여 호산대 너른 뜰에 빈틈없이 행군하여 들어오니 천자 대희하여 군중에 들어가 위로하고 적진형세와 수차 패함을 낱낱이 말하고 적응으로 선봉을 삼고 조정만을 중군을 삼아 황성으로 들어올 제 그 웅장한 거동은 추상 같은지라. 백사장 백 리에 군사 늘어서서 들어오니 남경이 비록 진탕하였으나 무서운 것이 천자의 기굴러라. 금산성하에 유진하고 싸움을 돋우니 이때 정문걸이 선봉에 있다가 청병이 옴을 보고 필마단창으로 나오거늘 한담이 문걸을 불러 왈,
“적병이 저다지 엄장한데 장군은 어찌 경솔히 가려 하오.”
문걸이 답왈,
“폐하, 어찌 소장의 재주를 수히 알으시나이까? 장편 군졸(長遍軍卒) 사십만과 백기(白騎)를 한 칼에 다 죽였으니 남경이 비록 육국에 청병하여 억만 병이 왔거니와 소장의 한 칼끝에 죽는 구경 앉아서 보옵소서.”
한담이 대희하여 장대에 높이 앉아 싸움을 구경할새, 문걸이 창검을 좌우에 갈라 잡고 마상에 높이 앉아 나는 듯이 들어가며 호통일성에,
“명제야, 옥새를 가져 왔느냐? 너를 잡으려 하였더니 이제 왔음에 진소위(眞所謂) 춘치자명(春雉自鳴)이라 바삐 항복하여 잔명을 보존하라.”
하고 억만군중에 무인지경같이 횡행하여 동장(東將)을 치는 듯 남장(南將)을 베이고, 북장(北將)을 베이는 듯 서장(西將)이 쓰러지니, 죽는 군사 여산(如山)하고 유혈(流血)이 성천(成川) 되었도다. 서초패왕(西楚覇王)이 강동 건너 함곡관을 부수는 듯, 상산(常山) 조자룡(趙子龍)이 산양수 건너 삼국 청병 지치는 듯, 문걸이 닫는 곳마다 싸울 군사 없었으니 그 아니 망극할까. 이때 천자 조정만과 옥새를 갖고 용동수에 빠지고자 하나 또한 도망할 길이 없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마지아니하더라.
백룡사에 득갑주창검(得甲冑槍劍)하고
송림촌에 득천사마(得天賜馬)하다
각설, 이때 유충렬이 서해 광덕산 백룡사에 있어 노승과 한가지로 지음(知音)이 되어 세월을 보내더니, 이때는 부흥 십삼 년 추칠 월 망간이라. 한풍(寒風)은 소소(蕭蕭)하고 낙목(落木)은 분분(紛紛)한데 고향을 생각하며 신세를 생각할 제 월경야삼경(月經夜三更)에 홀로 앉아 비감하더니, 노승이 일어나 밖에 갔다 들어오며 충렬을 불러 왈,
“상공이 금일 천문(天文)을 보았나이까?”
충렬이 놀래어 급히 나와 보니 천자의 자미성(紫微星)이 떨어져 명성원에 잠겨 있고, 남경에 살기(殺氣) 가득하였거늘 방으로 들어와 한숨 짓고 낙루(落淚)하니 노승이 왈,
“남경에 병난(兵亂)은 났거니와 산중에 피난하는 사람이 무슨 근심이 있으리까?”
충렬이 울며 왈,
“소생은 남경 세록지신(世祿之臣)이라 국변(國變)이 이러하니 어찌 근심이 없으리요마는 적수단신(赤手單身)이 만리 밖에 있사오니 한탄한들 어찌하리오.”
노승이 웃고 벽장을 열고 옥함을 내어 놓으며 왈,
“옥함은 용궁조화(龍宮造化)거니와 옥함 짬맨 수건은 어떠한 사람의 수건인지 자세히 보라.”
유생이 의심하여 옥함을 살펴보니,
“남경 도원수 유충렬은 개탁이라.”
금자로 새겨 있고 짬맨 수건을 끌러 보니,
‘모년 모월 모일에 남경 동성문 내에 사는 충렬의 모친 장 부인은 내 아들 충렬에게 부치노라.’
하였거늘 충렬이 수건과 옥함을 붙들고 방성통곡하거늘 노승이 위로 왈,
“소승이 수년 전에 절 중창(重刱) 화주(化主)로 변양 회수에 다다르니 기이한 오색 구름이 수건에 덮였거늘 바삐 가서 보니 옥함이 물가에 놓였거늘 임자를 주려 하고 갖다가 간수하였더니 금일로 볼진대 상공의 전쟁기계(戰爭機械)가 옥함 속에 있는가 하나이다.”
대체 이 옥함은 회수 사공 마철이가 물 속에 잠수질하다가 큰 거북이 옥함을 지고 나오거늘 마철이 거북을 죽이고 옥함을 가져다가 제 집에 두었던 전일 장 부인이 도적에게 잡히어 석장동 마철의 집에 가서 옥함을 갖다가 수건에 글을 쓰고 회수에 넣었더니 백룡사 부처중이 가져다가 이 날 충렬을 주었는지라.
이때 충렬이 옥함을 안고 왈,
“이것이 일정 충렬의 기물(器物)일진대 옥함이 열릴지라.”
하고 위짝을 열어 놓으니 빈틈없이 들었거늘 보니, 갑주 한 벌과 장검 하나, 책 한 권이 들었거늘 투구를 보니 비금비옥(非金非玉)이라 광채 찬란하여 안채(眼彩)를 쏘이는 중에 속을 살펴보니, 금자로 ‘일광주’라 새겨 있고, 갑옷을 보니 용궁조화 적실하다. 무엇으로 만들 줄 모를너라. 옷깃 밑에 금자로 새겨 있고, 장검은 놓였으되 두미(頭尾)가 없는지라 신화경을 펴 놓고 칼 쓰는 법을 보니,
“갑주를 입은 후에 신화경 일편을 보고 천상 대장성을 세 번 보게되면 사린 칼이 절로 퍼져 변화무궁할지라.”
하였거늘 즉시 시험하니 십척장검이 번듯하며 사람을 놀래거늘, 한가운데 대장성이 샛별같이 박혀 있고 금자로 새기기를 ‘장성검’이라 하였거늘, 모두 다 행장에 간수하고 노승더러 왈,
“천행으로 대사를 만나 갑주와 창검은 얻었거니와 용마(龍馬) 없었으니 장군이 무용지지(無容之地)라.”
한대 노승이 답왈,
“옥황께옵서 장군을 대명국에 보낼 제, 사해용왕이 모를쏜가. 수년 전에 소승이 서역에 가올 제, 백룡암에 다다르니 어미 잃은 망아지 누웠거늘 그 말을 데려왔으나, 산승(山僧)에게 부당(不當)이라 송임촌 동 장자에게 맡기고 왔으니 그 곳을 찾아가 그 말을 얻은 후에 중로에 지체 말고 급히 황성에 득달하와 지금 천자의 목숨이 경각(頃刻)에 있사오니 급히 가서 구원하라.”
한대 유생이 이 말을 듣고 송임촌을 바삐 찾아가 동 장자를 만난 후에 말을 구경하자 하니, 이때 천사마 제 임자를 만났으니 벽력 같은 소리하며 백여 장 토굴을 넘어 뛰어나와서 충렬에게 달려들어 옷도 물며 몸도 대어 보니 웅장한 거동은 일필(一筆)로 난기(難記)로다. 심산(深山) 맹호(猛虎) 냅다 선 듯, 북해 흑룡(北海黑龍)이 벽공(碧空)에 오르는 듯, 강산정기는 안채에 갈마 있고 비룡조화(飛龍造化)는 네 굽에 번듯한데, 턱 밑에 일점 용인의 새겼으되 ‘사송 천사마’라 하였거늘 유생이 대희하여 장자더러 말을 사자 하니 장자 웃어 왈,
“수년 전에 백룡사 부처중이 이 말을 맡기며 왈 ‘이 말을 길러내어 임자를 찾아주라’ 하기로 맡아 길렀더니 이 말이 장성함에 잡을 길이 없어 토굴에 가두었으나 천만 인이 구경하되 하나도 가까이 못 가더니 오늘날 그대를 보고 제 스스로 찾아오니 부처중이 이르던 임자 그대로 적실하니 하늘이 주신 보배니 어찌 판단 말인가, 물각유주(物各有主)오니 가져가옵소서.”
한대 유생이 대희하여 안장을 갖추어 동 장자를 하직하고 송임촌을 지나 광덕산을 행하여 노승에게 치하하고 적년(積年) 정회를 하직할 제 제사중(諸寺衆)의 제승(諸僧)들의 별회지담(別懷之談)을 어찌 다 설화하고 기록하리.
하직하고 그 말 위에 높이 앉아 남경을 바라보며 구름을 가리켜 말 더러 경계 왈,
“하늘은 나를 내시고 용왕은 너를 낼 제 그 뜻이 모두 다 남경을 돕게 함이라. 이제 남적이 황성에 강성하여 천자의 목숨이 경각에 있다 하니 대장부 급한 마음 일 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라. 너는 힘을 다하여 남경을 순식(瞬息)에 득달하라.”
그 말이 그 말을 듣고 청천을 바라보며 벽력 같은 소리하고 백운(白雲)을 헤쳐 나는 듯이 들어가니, 사람은 천신(天神)이요 말은 비룡(飛龍)이라. 남경을 바람같이 달려오니 금산성 너른 뜰에 살기가 충천하고 황성 문안에 곡성이 진동하더라.
이때 천자 중군 조정만으로 더불어 옥새를 가지고 도망하여 용동수에 빠져 죽고자 하되 적진을 벗어날 길이 없어 황황망극(遑遑罔極)하던 차에 문득 북편으로 천병만마(千兵萬馬) 들어오며 천자를 부르거늘 천자 대명군사 오는가 반겨 바래더니, 남적과 동심하야 마용이 진공이라 하는 도사를 데리고 천자를 치려 하여 억만 군병을 총독하여 일시에 들어오니 이때에 정한담이 천자 되어 백관을 거느리고 최일귀는 대장 되어 삼군을 경계할 제, 또한 북적이 합세하여 그 형세 웅장함이 만고에 으뜸이라.
선봉장 정문걸이 의기양양하여 명진 육국청병을 한 칼에 다 무찌르고 선봉을 헤쳐 진중에 들어와,
“명제야 항복하라! 내 한 칼에 육국청병 다 죽어 있고 또한 북정이 합세하였으니 네 어이 당할쏘냐. 바삐 나와 항복하여 너의 모자를 찾아가라.”
하고 지쳐 들어오니 이제 천자 하릴없어 옥새를 목에 걸고 항서(降書)를 손에 들고 항복하려 하고 나올 적에 중군 조정만과 명진에 남은 군사 어찌 아니 한심하고 슬프리요. 천자의 울음소리 명성원이 떠나가게 방성통곡하며 항복하러 나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