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하(券之下)
각설, 이때 유충렬이 금산성하에서 망기(望氣)하다가 형세 위급함을 보고 일광주 용인갑에 장성검을 높이 들고 천사마를 채질하여 바삐 중군소에 들어가 조정만을 보고 성명을 올려 싸우기를 청한대, 중군이 바삐 나와 손을 잡고 울며 왈,
“그대 충성은 지극하나 지금 황상(皇上)이 항복하려 하시고 또한 적진 형세 저러하니 그대 청춘이 전장백골(戰場白骨) 될 것이니 원통하고 망극하다.”
충렬이 불승분기(不勝忿氣)하여 진문(陣門) 밖에 나서면서 벽력같이 소리하여 적장(敵將)을 불러 왈,
“이봐, 역적 정한담아! 남경 동성문 내에 사는 유충렬을 아는다 모르는다. 바삐 나와 목을 드리라.”
하는 소리 양진이 뒤놀며 천지 강산이 진동하니, 문걸이 대경하여 돌아보니 일광투구에 안채 쏘이고 용인갑은 혼신을 감추고 천사마는 비룡되어 운무(雲霧)중에 싸여, 공중에 소리만 나고 제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니 창검만 높이 들고 주저주저 하던 차에 벽력 같은 소리 끝에 장성검이 번듯하며 정문걸의 머리 공중에 베어 들고 중군으로 달려드니, 조정만이 엎더지며 문 밖에 급히 나와 손을 잡고 들어갈 제, 이때 천자는 옥새를 목에 걸고 항서를 손에 들고 진문 밖에 나오다가 뜻밖에 호통 소리 나며 일원대장이 문걸의 머리를 베어 들고 중군으로 들어가거늘, 대경(大驚) 대희(大喜)하여 중군을 급히 불러 왈,
“적장 베이던 장수 성명이 뉘냐. 바삐 입시(入侍)하라.”
충렬이 말에서 내려 천자전에 복지(伏地)한대 천자 급히 문왈,
“그대는 뉘신지 죽을 사람을 살리는가?”
충렬이 저의 부친과 강희주 죽음을 절분히 여겨 통곡하며 여쭈오대,
“소장은 동성문 내 거(居)하던 정언주부 유심의 아들 충렬이옵더니 주류개걸하여 만리 밖에 있삽다가 아비 원수 갚으려고 여기 잠깐 왔삽거니와, 폐하 정한담에게 곤핍(困乏)하심은 몽중(夢中)이로소이다. 전일에 정한담을 충신이라 하시더니 충신도 역적 되나이까? 그놈의 말을 듣고 충신을 원찬하여 다 죽이고 이런 환을 만나시니 천지 아득하고 일월이 무광(無光)하옵니다.”
슬피 통곡하며 머리를 땅에 두드리니 산천초목도 슬퍼하며 만진중(滿陳中)이 낙루 아니할 이 없더라.
천자 이 말을 들으시고 후회막급(後悔莫及) 할말없어 우두커니 앉았더니, 태자 적진에 잡혀 갔다가 본진에서 문걸 베임을 보고 탈신(脫身) 도주(逃走) 급히 와서 충렬의 손을 붙들고 왈,
“경이 이게 웬말인가. 옛날 주 성왕(周成王)도 관채(管蔡)의 말을 듣고 주공(周公)을 의심더니 회과자책(悔過自責)하여 성군(聖君)이 되었으니 충신이 다 죽기는 막비천운(莫非天運)이라 그런 말을 하지 말고 진충갈력(盡忠竭力)하여 황상을 도우시면 태산 같은 그 공로는 천하를 반분(半分)하고 하해 같은 그 은혜는 풀을 맺어 갚으리라.”
충렬이 울음을 그치고 태자 상(相)을 보니 천자 기상(氣像) 적실하고 일대성군(一代聖君) 될 듯하여 투구 벗어 땅에 놓고 천자전에 사죄(謝罪) 왈,
“소장이 아비 죽음을 한탄(恨歎)하여 분심이 있는 고로 격절(激切)한 말씀을 폐하전에 아뢰었으니 죄사무석(罪死無惜)이라. 소장이 죽사온들 폐하를 돕지 아니하오리까?”
천자 충렬의 말을 듣고 친히 계하(階下)에 내려와서 투구를 씌우면서 손을 잡고 하는 말이,
“과인(寡人)은 보지 말고 그대 선조 창건하던 일을 생각하여 나라를 도와주면 태자 하던 말대로 그대 공을 갚으리라.”
충렬이 청명하고 물러나와 장대(將臺)에 높이 앉아 군사를 총독하니 피병장졸(疲兵將卒)이 불과 일이백 명이라. 천자 삼층단에 높이 앉아 하늘께 제사하고 인검(印劍)을 끌러내어 충렬을 주신 후에 대장 사명기(司命旗)에 친필로 쓰시기를 ‘대명국(大明國) 대사마(大司馬) 도원수(都元帥) 유충렬’ 이라 뚜렷이 써 내주니 원수 사은하고 진법을 시험할 제, 장사일자진(長蛇一字陳)을 쳐 두미(頭尾)를 상합(相合)케 하고 군중에 호령하되,
“남북적병이 비록 억만 병이라도 내 혼자 당하려니와 너희 등은 항오(行伍)를 잃지 말라.”
약속할 제, 이 적에 적진 중에서 문걸 죽음을 보고 일진이 진동하여 서로 나와 싸우려 할새 삼군대장 최일귀 분기를 이기지 못하여 녹포운갑에 백금투구를 쓰고 장창대검을 좌우에 갈라 들고 적제마를 채질하여 나는 듯이 달려들며 외여 왈,
“적장 유충렬아, 네 아직 미거하여 남북강병 억만 군을 능멸히 생각하니 바삐 나와 죽어 보라.”
원수 장대에 있다가 최일귀란 말을 듣고 바삐 나와 응성(應聲)하되,
“정한담은 어디 가고 너만 어찌 나왔느냐. 너희 두 놈의 간을 내어 우리 부모 영위전(靈位前)에 재배(再拜)하고 드리리라.”
함성하고 달려들어 장성검이 번듯하며 일귀 가진 장창대검이 편편파쇄(片片破碎) 부서지니, 최일귀 대경하여 철퇴로 치자 한들 원수 일신이 보이지 아니하니 치자 한들 어이하리, 적진 중에서 옥관도사 싸움을 구경타가 대경하여 급히 쟁(錚)을 쳐 거두오니, 일귀 겨우 본진에 돌아와 정신을 잃었는지라.
이때 북적 선봉 마룡은 천하에 명장이라, 충렬을 잡지 못하고 돌아옴을 분히 여겨 진문을 헤쳐 왈,
“대장은 어찌 조그마한 아이를 살려두고 오니이까? 소장이 잡아 오리이다.”
하며 나는 듯이 들어올 제, 북적 진중에서 또한 도사 진진이 나와 마룡의 말머리를 잡고 왈,
“대장은 가지 마옵소서. 적장의 갑주창검을 보니 용궁의 조화라. 수년 전에 대장성이 남경에 떨어지더니, 이제 검술을 보니 북두성 대장성이 칼 빛을 응하며, 일광주 용인갑은 일신을 가리었으니 사람은 천신이오 말은 비룡이라 뉘 능히 당하리요.”
마룡이 분노하여 도사를 꾸짖어 왈,
“대장부 앞에 요망한 도사놈이 무슨 잔말을 하느냐. 바삐 물러서라.”
진진이 생각하되 미구(未久)에 대환(大患)이 있을지라 진중에 들지 말고 소로(小路)로 도망하여 싸움을 구경터라.
이때에 마룡이 좌수에 삼천 근 철퇴를 들고 우수에 창검을 들고 호통을 지르며 나와 원수를 맞아 싸우더니, 일광주에 쏘이어 두 눈이 캄캄하여 정신이 없는지라, 운무중에 소리나며 검광이 빛나며 원수를 치려 하니 장성검이 번듯하여 마룡의 손을 치니, 철퇴 든 팔이 마저 땅에 떨어지니 마룡이 대경하여 우수에 잡은 칼로 공중에 솟아 번개를 냅다 치니 구척장검 길고 긴 칼이 낱낱이 파쇄하여 빈 자루만 남은지라. 제 아무리 명장인들 적수(赤手)로 당할쏘냐. 본진으로 도망코자할 즈음에 벽력 같은 소리 진동하며 장성검이 번듯하며 마룡의 머리 안개 속에 내려지니 목은 질러 본진에 던지고 몸은 적진에 던지며 왈,
“이봐 정한담아. 바삐 나와 죽기를 재촉하라. 네놈도 이같이 죽이리라.”
하며 좌우로 횡행하되 공중에 소리만 나고 일신은 아니 보이니 적진이 대경하여 혼불부신(魂不附身)하더라.
한담이 대로하여 용상을 치며 왈,
“억만 군중에 충렬이 잡을 자 없느냐?”
형사마 비껴 타고 십척장검 빼어 들며 진문 밖에 썩 나서니 최일귀 응성하고 나와 왈,
“대장은 아직 참으소서. 소장이 당하리다.”
하며 나는 듯이 들어가며 외여 왈,
“적장 유충렬은 이제 미결한 싸움을 결단하자.”
원수 응성하고 천사마상 번뜻 올라 좌수의 신화경은 신장을 호령하고 우수의 장성검은 일월을 희롱하는지라. 적진을 바라보고 나는 듯이 들어가 혼신이 일광되어 가는 줄을 모를네라. 일귀를 맞아 싸워 반 합이 못하여서 장성검이 번듯하며 일귀의 머리를 베어 칼 끝에 꿰어 들고 본진으로 돌아와서 천자전에 바쳐 왈,
“이것이 최일귀 머리 적실하오니까?”
천자 일귀의 목을 보고 대분(大忿)하사 도마 위에 올려놓고 점점이 오리면서 원수를 치사 왈,
“짐이 불명하여 이놈의 말을 듣고 경의 부친을 문외출송(門外出送)하였더니 이놈이 나를 속여 만리 연경에 보냈으니 이제는 설치(雪恥)하고 경의 은혜 논지(論之)컨대 할부봉양(割膚奉養) 부족이라. 백골이 진토(塵土) 되어도 그 은혜를 다 갚으리. 황태후는 어디 가고 이놈 고기 맛볼 줄을 모르는가.”
원수의 손을 잡고 백 번이나 치사하니 원수 더욱 감축하여 고두사례(叩頭謝禮)하고 군중으로 물러나오니 중군 조정만이 즐거움을 측량치 못하여 대하(臺下)에 내려 백배치사하며 즐기더라.
이때 한담이 일귀 죽음을 보고 분심이 충장(充壯)하여 벽력 같은 소리를 천둥같이 지르고 장창대검 다잡아 쥐고 전장 오백 보를 솟아 뛰어서며 육정육갑(六丁六甲)을 베풀어 좌우 신장 옹위하고 둔갑장신(遁甲藏身)하여 변화를 부쳐 두고 호통을 크게 질러 원수를 불러 왈,
“충렬아 가지 말고 네 목을 바삐 납상(納賞)하라.”
원수 한담이 나옴을 보고 대희하여 응성하고 나올 제 천자 원수를 당부 왈,
“한담은 일귀 마룡의 유(類) 아니라 천신의 법을 배워 만부부당지력(萬夫不當之力)이 있고 변화불측(變化不測)하니 각별히 조심하라.”
원수 크게 웃고 진전(陳前)에 나서 한담을 망견(望見)하니, 신장이 십여 척이요 면목이 웅장하며, 황금투구의 녹포운갑에 조화를 붙였는데 천상 익성정신을 흉중에 갈무었으니 일대명장(一代名將)이요 역적 될 만한지라, 원수 기운을 가다듬고 신화경을 잠깐 펴 익성정신을 쇠진(衰盡)케 하고 장성검을 다시 닦아 성채(星彩) 찬란케 하고 변화의 은신(隱身)하고 호통을 크게 하며 한담을 불러 왈,
“네놈은 명나라 정종옥의 자식 정한담이 아니냐. 세대로 명나라 녹을 먹고 그 인군을 섬기다가 무엇이 부족하여 충신을 다 죽이고 부모국을 치려 하니 비단 천하 사람뿐 아니라 지하 귀신들도 너를 잡아 황제전에 드리고자 할 것이니 너 같은 만고역적(萬古逆賊)이 살기를 바랄쏘냐. 네놈을 생금(生擒)하여 전후죄목을 물은 후에 너의 살을 포육(脯肉)을 떠서 종묘(宗廟)에 제사하고 그 남은 고기는 받아다가 우리 부친 충혼당(忠魂堂)에 석전제(夕奠祭)를 지내리라. 바삐 나와 나를 보라.”
한담이 분노하여 응성출마(應聲出馬) 나오거늘 원수 한담을 맞아 싸울새 칼로 치게 되면 반 합에 죽을 것이로되 살리고 잡고자 하여 장성검 높이 들어 한담을 치렸더니 한담은 간데없고 편편채운(翩翩彩雲)이 일어나며 원수의 장성검의 검광(劍光)이 없어지고 펴 있던 칼이 도로 사리거늘 원수 대경하여 급히 물러와 신화경을 바삐 펴 일편을 외인 후에 장성검을 세 번 치며 풍백(風伯)을 바삐 불러 채운을 쓸어 버리고 안순풍이지조화를 부쳐 적진을 살펴보니 한담이 변신하여 채운에 싸이어 십여 척 장검 번뜩이며 원수를 따르거늘, 원수 그제야 깨닫고 왈,
“한담은 천신이라 산 채로 잡으려 하다가는 도리어 환을 당하리라.”
하고 싸우러 나갈 제, 진전에 안개 자욱하며 장성검 번개 되어 공중에 빛나며 한담을 치랴 하되 한담의 몸에는 종시 칼이 가직이 가들 못 하거늘 적진을 향하여 뒤로 들어 진중을 헤칠 듯하니 한담이 원수를 따라 잡으려 하고 급히 회마차의 번개 언듯하며 한담의 탄 말이 땅에 거꾸러지거늘 급히 칼을 들어 한담의 목을 치니 목은 맞지 아니하고 투구만 깨어지니 적진에서 한담의 투구 깨어짐을 보고 대경하여 급히 쟁을 쳐 거두움에 한담이 기운이 쇠진하여 거의 죽게 되었더니 쟁을 쳐 거둠에 본진에 돌아와 정신을 놓고 기운을 수습지 못하거늘 좌우 구하니 겨우 정신을 차려 앉으며 왈,
“선생은 어찌 알고 소장을 불렀나이까?”
도사 왈,
“적장의 칼끝이 장군의 투구 깨어지기로 만분 위태하여 불렀노라.”
한담이 대경하여 머리를 만져 보니 투구 없는지라 더욱 놀래 왈,
“적장은 일정 천신이요 사람은 아니로다. 십 년을 공부하여 사람은 커니와 귀신도 측량치 못하는 법이 많았더니 마룡과 최일귀 죽음을 조심하여 십 년 배운 법을 오늘날 모두 다 베풀어 적장을 잡으려 하더니 잡기는 새로이 기운을 쇠진하여 거의 죽게 되었더니 천행으로 선생의 힘을 입어 목숨이 살았으나 천만 가지로 생각하되 힘으로는 잡을 수 없으니 선생은 깊이 생각하옵소서.”
도사 이 말을 듣고 간담이 서늘하여 이윽히 생각하다가 군중에 전령(傳令)하여 진문을 굳이 닫고 한담을 불러 왈,
“적장을 잡으려 할진대 인력(人力)으로는 잡지 못할 것이니 군장기계를 모아 여차여차(如此如此)하였다가 적장을 유인하여 진중에 들게 되면 제 비록 천신이라도 피할 길이 없으리라.”
한담이 대희하여 도사의 말대로 약속을 정제(定制)하고 수일을 지낸 후에 갑주를 갖추고 진문에 나서며 원수를 불러 왈,
“네 한갖 혈기만 믿고 우리를 대적하니 후생(後生)이 가외(可畏)로다. 빨리 나와 자웅(雌雄)을 결단하라.”
이때에 원수 의기양양하여 진전에 횡행타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응성출마하여 일 합이 못하여 거의 잡게 되었더니 적진이 또한 쟁을 쳐 거두거늘 승승축부(勝勝逐赴)하여 바로 적진 선봉을 헤쳐 달려들 제 장대에서 북소리 나며 난데없는 안개 사면에 가득하고 적장이 간데 없고 음풍(陰風)이 소소(蕭蕭)하며, 한설(寒雪)이 분분(紛紛)한데 지척을 모를러라. 가련하다 유충렬이 적장 꾀에 빠져 함정에 들었으니 명재경각(命在頃刻)이라. 원수 대경하여 신화경을 펴 놓고 둔갑장신하여 일신을 감추고 안순법을 베풀어 진중을 살펴보니 토굴을 깊이 파고 그 가운데 장창검극(長槍劍戟)은 삼대같이 벌였으며 사해신장(四海神將)이 나열하여 독한 안개, 모진 사석(沙石) 사면으로 뿌리면서 함성 소리 크게 질러,
“항복하라!”
하는 소리 천지 진동하는지라. 원수 그제야 간계(奸計)에 빠진 줄 알고 신화경을 다시 펴 육정육갑을 베풀어 신장을 호령하여 풍백(風伯)을 바삐 불러 운무(雲霧)를 쓸어 버리니, 명랑한 청천백일(靑天白日) 일광주를 희롱하고 장성검은 번개 되어 적진 중에 요란할 제, 적진을 살펴보니 무수한 군졸이며 진중에 모든 복병 둘러싸서 백만 겹을 에웠는데, 장대에서 북을 치며, 군사를 재촉커늘, 원수 분노하여 일광주를 다시 만져 용인갑을 다스리고 천사마를 채질하여 좌우진중(左右陣中) 호통하며 좌충우돌(左衝右突) 회행할 제 호통 소리 지나는 곳에 번갯불이 일어나며 번갯불 일어나는 곳에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진동하니 군사 장수 넋을 잃고 모든 장수 귀가 먹고 눈이 어두워 제 군사를 제 모른다. 서로 밟혀 분주할 제, 변화 좋은 장성검은 동천(東天)에 번듯하며 호적(胡敵)이 쓰러지고 서천(西天)에 번듯하여 전후 군사 다 죽으니 추풍낙엽 볼 만하며, 무릉도원(武陵桃源) 홍유수(紅流水)는 흐르나니 핏물이라. 선봉 중군 다 헤치고 적진 장대 달려드니 정한담이 칼을 들고 대상에 섰거늘 호통 소리 크게 하고 장성검을 높이 들어 대칼에 베어 들고 후군에 달려드니, 이때 황후 태후 적진에 잡혀 가서 토굴 속에서 소리하여 하는 말이,
“저기 가는 저 장수는 행여 명나라 장수거든 우리 고부(姑婦) 살려 주소.”
원수 분기 등등하여 적진에 횡행타가 슬픈 소리 나며, 천사마 그 곳을 행하거늘, 급히 가 보고 말에서 내려 왈,
“소장은 동성문 내 거하던 유 주부 아들 충렬이옵더니 아비 원수 갚으려고 불원천리(不遠千里) 달려와서 정문걸을 한 칼에 베이고 그 후에 최일귀 마룡을 잡고 한담의 목을 베러 이곳에 왔사오니 소장과 함께 본진으로 가사이다.”
황후 태후 이 말을 듣고 토굴 밖에 나와 원수의 손을 잡고 치사하여 왈,
“그대 일정 유 주부의 아들인가. 어디 가 장성하여 저런 명장 되었는가? 그대 부친은 어디 있느뇨? 장군의 힘을 입어 우리 고부 살려내어 소소백발 이내 몸이 천자 아들 다시 보고, 연연홍안(연연홍안(姸姸紅顔)) 내 며느리 황제 낭군 다시 보게 하니 그 공로 그 은혜는 태산이 무너져서 평지가 되어도 잊을 수 없고 천지가 변하여 벽해(碧海)가 될지라도 잊을 가망 전혀 없네, 머리를 베어 신을 삼고 혀를 빼어 창을 받아 백 년 삼만 육천 일에 날마다 이고서도 그 공로를 다 갚을가 본진에 돌아가서 내 아들 어서 보세.”
원수 배사하고 황태후를 바삐 모셔 본진에 돌아와 정한담의 목을 내어 천자전에 바치려고 칼 끝에 빼어 보니 참놈은 간데없고 허수아비 목을 베어 왔는지라. 원수 분노하여 다시 싸움을 돋우더라.
이때 천자 양진 싸움을 구경터니 원수 적진에 달려들며 사면에 안개 가득하고 적진 복병이 벌 일듯하여 빈틈없이 둘러싸고 고각함성은 천지 진동하고 원수의 검광이 뵈이지 아니하거늘 천자 대경실색하여 발을 구르며 땅에 엎더져 통곡 왈,
“이제는 죽었구나. 천행으로 충렬을 얻었더니 이제는 죽었으니 불칙한 내 팔자 살아 무엇하리, 신령하신 황천후토(黃泉后土)는 이런 경상(景狀)을 살피사 유충렬을 살려 주소서.”
이렇듯이 슬피 울더니 뜻밖에 적진 중에 안개 없어지며 벽력 같은 소리나며 장성검 번개 되어 적진 억만 병을 순식간에 쓰러져 무인지경 되었는데 일원대장이 진문 밖에 나서며 황후 태후를 모시고 본진으로 돌아오거늘, 천자와 태자 버선발로 달려들어 천자는 원수 손을 잡고, 태자는 태후의 손을 잡고 한데 어우러져 즐거운 마음 측량 없어, 울음 절반, 웃음 절반 두 가지로 섞이어서, 천자는 옥새를 목에 걸고 항서는 손에 들고 항복하러 나오다가 뜻밖에 충렬을 얻어 살아난 말씀을 하고 황태후는 적진에 잡혀가 토굴 속에 갇히었다가 뜻밖에 원수 만나 살아 온 말씀을 하고 군사들도 즐거워 치하 분분하더라.
이때 정한담이 도사의 꾀를 듣고 적장을 유인하여 함정에 넣었더니 죽기는 고사하고 삼군 억만 병을 한 칼에 무찌르고 장대에 달려들어 한담의 혼백 붙인 위인을 베이고 후군을 지치다가 황태후를 데려가는 양을 보고 넋을 잃어 도사에게 들어가 여쭈오되,
“충렬은 일정 천신이라. 이제는 백계무책(百計無策)이오니 선생은 어찌하오리까?”
도사 대경망극하여 아무리 할 줄을 모르다가 한 꾀를 생각하고 한담을 불러 왈,
“적장 유충렬은 거거년전(去去年前)에 연경으로 귀양간 유심의 아들이라 하니 이제 급히 군사를 재촉하여 유심을 잡아다가 진중에 가두고 죽이려 하면 제 아무리 충신이나 인군만 생각하고 제 아비를 생각지 아니하랴.”
한담이 이 말을 듣고 대희하여 군중에게 전령하되 날랜 군사 십여 명을 조발(調拔)하여 유 주부를 빨리 나입(拿入)하라 분부하니라.
각설, 이때 유 주부가 북방 극한지지(極寒之地)에 누년(累年) 고생함에 위인이 보잘것없고, 남경에 난리났단 말을 듣고 주야 근심하며, 행여 천자 죽을까 염려하여 동지장야(冬至長夜) 길고 긴 밤에 촉불만 돋워 켜고 축수 왈,
“명천(明天)이 감동하사 우리 천자 살릴진대, 내 아들 충렬이 살았거든 남경을 구원하고 제 아비 원수를 갚게 하소서.”
이렇듯이 정성을 드리더니 뜻밖에 한 떼 군사 달려들어 유 주부를 잡어내어 수레 위에 높이 싣고 불원천리 재촉커늘 유 주부 정신없어 인사를 놓았다가 겨우 인사를 차려 생각하되,
‘이제는 하릴없이 죽는도다. 우리 천자 승천하셨으면 날 잡아오라기 만무하다. 일정 정한담이 역적 되어 천자를 죽이고 나도 또한 죽이려고 이 지경이 되었구나. 청천일월도 무심하고 형산신령도 못 믿겠다. 내 아들 충렬이도 정녕 죽었구나. 살았으면 어디 가서 아비 원수 못 갚는가.’
이렇듯이 슬피 울 제 군사들도 낙루하더라.
여러 날 만에 적진중에 득달하니 이때 정한담이 용상에 높이 앉아 곤룡포(袞龍袍)를 정히 입고 백관이 시위(侍衛)하여 유심을 잡아다가 계하에 엎지르고 달래어 하는 말이,
“그대 마음이 하 고집이기로 만리 연경에 수년을 고생하니 내 마음이 불안한지라. 이제는 짐이 천자 되어 백관을 거느렸더니 그대 아들이 아직 미거(未擧)하여 천위(天威)를 모르고 죽은 명제(明帝)를 살리려고 우리 군사를 침노하니 죄상을 논지컨대 진작 죽일 것이로대 그대를 생각하여 아직 살려 두었더니 종시 항복지 아니하기로 그대를 데려다가 자식에게 편지나 하여 부자 함께 만나 나를 도우면 고관대작(高官大爵)은 원대로 할 것이니 부디 사양치 말라.”
유 주부 이 말을 듣고 분심이 탱장(撑腸)하여 눈을 부릅뜨고 쪽골쳐 앉으며 왈,
“네 이놈 정한담아, 천지도 무섭잖고 일월도 두렵지 아니하냐. 나는 자식도 없고, 자식이 설혹 있은들 우리 천자를 모시고 너 같은 역적 놈을 죽이려 하는데 그 아비 무슨 일로 성군을 저버리고 역적을 도우라 하며, 내 자식은 새로이 광대한 천지간이 삼척동자도 네 고기를 먹고자 하느니, 하물며 내 아들을 옥황이 점지하사 남경을 도우라 하였으니 만고역적 너 같은 놈을 섬길 듯하냐.”
이렇듯이 공책(恐責)하며 노기등등(怒氣騰騰)하거늘, 한담이 대로하여 유심을 잡아내어 군중에 베이라 하니 곁에 있던 군사 벌떼같이 달려들어 검극(劍戟)을 번득이며 유 주부를 잡아내니, 도사 한담을 말려 왈,
“그대 어찌 경선(輕先)히 아는다? 유심의 상을 보니 당대 왕후 기상이니 천명이 완연커늘 그리할 가망 있을쏘냐. 만일 죽였다가는 대환이 목전(目前)에 있을 것이니 분심을 참으소서.”
한담이 분기를 이기지 못하여 생전 돌아보지 못할 데로 다시 귀양 보내고 거짓 유심의 편지를 만들어 무사로 하여금 명진 중에 쏘아 원수를 보게 하니 이때 원수 장대에 앉았다가 난데없는 살 하나가 진중에 내려지거늘, 급히 주워다가 살을 보니 살 끝에 편지 한 장 달렸거늘 끄러 보니 그 편지 하였으되,
연경에 적거한 유 주부는 뷸효자 충렬에게 일장서간(一張書簡) 부치나니 급히 받아 떼어 보라.
오호라! 너의 부모 연광이 반이 넘어 일점혈육 없었더니 남악산에 산제하고 너를 늦게야 낳아 영화를 보렸더니 나의 팔자 기박하여 천자께 득죄하고 만리 연경에 귀양가서 사생이 관두(關頭)하되 아비를 찾지 아니하는구나. 부모를 상봉함은 천륜(天倫)에 당연커늘 너의 몸만 장성하여 망한 나라 섬기려고 새나라를 침노하니 새 천자 네 아비를 잡아다가 너같이 몹쓸 자식 두었다 하시고 도마 위에 올려놓고 죽이려 하니 이 아니 망극하냐. 세상 사람이 자식 낳으면 좋다 하는 말이 자식의 힘을 입어 영화를 보는 고로 생남(生男)하면 좋다 하는데 나는 무슨 죄로 영화 보기는 새로이 소소백발 파리한 목에 창검이 웬일이며, 피골상연 늙은 수족 수레소를 어이하리, 네가 일정 나의 자식이거든 급히 항복하여 우리 부자 상봉하여 만종록(萬鍾祿)을 먹게 하라. 만일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면 죽은 혼이라도 자식이라 아니 하고 모진 귀신 되어 네 몸을 해하리라. 할말이 무궁하되 명재경각(命在頃刻)하여 황황하기로 그치노라.
하였더라.
원수 이 편지를 보고 정신이 아득하여 흉중이 막혀 인사를 모르더니 겨우 진정하여 천자께 들어가 그 편지를 드리며,
“이 글을 보옵소서, 폐하 전일에 소신 아비의 필적을 보았을 것이니 이게 정녕 아비의 필적이오니까?”
천자와 태자 그 편지를 다 본 후에 박장대소(拍掌大笑)하며 원수를 위로 왈,
“그대의 부친이 죽은 지 오랜지라 혼백이 살았더래도 글씨를 보니 전후 불견(不見) 필적이라. 설령 살았을지라도 이런 말을 어이 할까. 장군은 염려 말고 정한담을 사로잡아 그 곡절을 물어 보면 내 말이 옳다 하리라.”
원수 물러나와 생각하되 전일 강 승상을 만날 때에 멱라수 회사정에 부친이 빠져 죽은 표적을 붙였으니 부친이 죽기는 적실한지라 이제 어찌 적진에 들어가 편지를 부쳤으리오. 그러나 나의 마음 심란(心亂)하다. 적진을 쳐 파하고 한담을 사로잡아 이 일을 해득(解得)하리라 하고 일광주를 다시 씻고 황룡수(黃龍鬚)를 거스르고 봉의 눈을 부릅뜨며, 용인갑을 졸라 입고 대장검을 높이 들며 신화경을 손에 들고 천사마를 바삐 몰아 전진에 나서며 한담을 크게 불러 왈,
“네 이놈 간사한 꾀를 내어 나를 항복코저 하거니와 내 어찌 모를쏘냐. 바삐 나와 죽어 보라.”
한담이 황겁하여 도성에 들어가고 선봉을 머무르며 군문을 굳이 닫고 나지 아니하거늘, 원수 승승축부하여 적진에 달려들어 장성검 번듯하며 적진 선봉 씨가 없이 다 죽이고 도성문에 달려드니 사대문이 닫혔거늘 호통 소리 한마디에 장성검을 번득이며 철편으로 문을 치니, 문이 편편파쇄하여 동시월 설한풍(雪寒風)에 백설같이 흩날리더라. 순식간에 달려들어 궐문 밖에 진친 군사 대칼에 무찌르고 정한담을 바삐 찾아 궐문 안에 들어갈새, 이때 한담이 원수 도성에 든단 말을 듣고 황황급급 북문으로 도망하여 도사를 데리고 호산대에 높이 올라 피난하는지라.
원수 도성에 들어 한담의 가권을 잡고 또 저의 삼족(三族)을 다 잡아 본진으로 보내고 만조백관을 호령하여 옥연(玉輦)을 갖추어 본진에 돌아가 천자를 모셔 환궁하고 한담의 가솔(家率)을 낱낱이 문죄 후에 씨 없이 베이고 조정만을 신칙하여 본진을 지키우고, 원수는 전일 살던 집터를 가 보니, 웅장한 고루거각 빈 터만 남았더라. 슬픈 마음 진정하고 궐문을 향하여 돌아서니 부모 생각 측량 없어 나가는 길이 캄캄하여 참을 길이 없는지라. 갑주 벗어 땅에 놓고 가슴을 두드리며 대성통곡하는 말이,
“옛날에 기자도 나라가 망한 후에 옛터를 지나다가 궁실이 무너져서 쑥대밭이 됨을 보고 맥수가(麥秀歌)를 슬피 지어 고정(故情)을 생각하더니, 이제 유충렬은 물 가운데 부모 잃고 도로에 개걸타가 이내 몸이 장성하여 살던 터를 다시 보니 장부 한숨 절로 난다. 우리 부모는 어디 가시고 이런 줄을 모르시는가. 상전벽해(桑田碧海) 한단 말을 곧이 아니 들었더니 이 내일을 생각하니 백 년 인생 초로(草露)같고 만세 광음 유수(流水)로다. 부귀영화 본다 하고 부디 사람 경(輕)히 말고 제 복 있어 잘 산다고 일가친척 괄세 마소. 고진감래(苦盡甘來) 흥진비래(興盡悲來)는 고금(古今)에 상사(常事)로세. 양지(陽地)가 음지(陰地) 되고 음지가 양지 되는 줄을 그 뉘라서 알아보리, 권세 좋다 귀하다고 천만 년을 믿지 마소.”
이렇듯이 낙루하고 도성에 돌아오니 만조백관 시위(侍衛) 중에 충신은 다 죽고 남아 있는 자는 정한담의 동류(同類)라. 낱낱이 잡아내어 죄지경중(罪之輕重)하여 장안시에 처참하고 정한담을 찾으려고 군중에 전령하여 찾으니라.
이때 정한담이 호산대에서 도사더러 의논할새, 도사 한 꾀를 생각하여 왈,
“이제 백계무책(百計無策)이라. 여간 남은 군사로 패문(牌文) 지어 남만과 서번과 호국에 보내어 패전한 말을 하고 구원병을 청하여 한번 싸운 후에 사불여의(事不如意)하면 목숨만 도망하여 후일을 봄이 어떠하뇨.”
한담이 대희하여 패문을 지어 급히 오국에 보내니라. 이때 오국 군왕이 각기 장수를 보내어 승전하기를 주야 기다리더니 뜻밖에 패군한 소식이 왔거늘 각각 분노하여 서천 삼십육 도 군장이며 가달 토번왕과 호국대왕이 정병 팔십만과 용장 천여 원이며 신기한 도사를 좌우에 앉히고 진세를 살피며 각각 군왕 등은 중군이 되어 천하명장을 간택하여 선봉을 정한 후에 행군을 재촉하여 달려드니 그 거동 웅장함은 일구난설(一口難說)이라.
이때 정한담이 청병 옴을 보고 기운이 펄쩍하여 성명을 바삐 적어 군중에 통지하고 도사와 함께 호왕께 헌신하고 전후수말(前後首末)을 낱낱이 아뢰니 호왕 등이 이 말을 듣고 정문걸이며 마룡이 죽었단 말을 듣고 간담이 서늘하여 접전할 마음이 없으나 한갖 분심을 못 이기어 정한담과 동심하여 호산대에 진을 치고 격서를 남경으로 보내니라.
이때 원수는 도성에 들고 조정만은 금산성하에 유진하였더니 뜻밖에 조정만이 장계를 올리거늘 급히 개탁하여 보니 하였으되,
오국군왕들이 패군한단 말을 듣고 각각 중군이 되어 오는 중에 정한담과 옥관도사 합력하여 격서를 보내었으니 원수는 급히 와 방적(防敵)하소서.
하였거늘 원수 듣고 크게 웃어 왈,
“정문걸 마룡은 천하 명장이라도 내 칼 끝에 죽었거든 하물며 오국병호야 비록 승천입지(昇天立地)하는 놈이 선봉이 되었으나 한갓 장성검의 피만 묻힐 따름이라 황상은 염려 마옵시고 소장의 칼 끝에 적장의 머리 떨어지는 구경이나 하옵소서.”
즉시 갑주를 갖추고 본전에 돌아와 군사를 신칙하여 항오를 각별이 단속하고 적진에 글을 보내 싸움을 도울 제, 이때 정한담이 오국군왕전에 한 꾀를 드려 왈,
“도사의 재주는 소장이 십 년을 공부하여 변화무궁하오니 구척장검 칼머리에 강산도 무너지고 하해도 뒤놉더니, 명진 도원수 유충렬은 천신이요 사람은 아니라, 이제 대왕이 억만 병을 거느려 왔으나 충렬 잡기는 새로이 접전할 장수 없사오니 만일 싸우다가는 우리 군사 씨가 없고 대왕의 중한 목숨 보존하기 어려울 것이니 오늘밤 삼경에 군사를 갈라 금산성을 치게 되면 제 응당 구할 차로 올 것이니, 그때를 타 소장은 도성에 들어가 천자를 항복받고 옥새를 앗았으면 제 비록 천신인들 제 인군 죽었는데 무슨 면목으로 싸우리까. 그 꾀 마땅하오니 대왕의 처분은 어떠하시니까?”
호왕이 대희하여 한담으로 대장 삼고 천극한으로 선봉을 삼고 약속을 정제할 제, 제군 중에 기치를 둘러 도성으로 갈 듯이 하니 원수 산하에 있다가 적세를 탐지하고 도성에 들어오니라.
이 밤 삼경에 한담이 선봉장 극한을 불러 군사 십만 명을 주어 금산성을 치라 하니 극한이 청명하고 금산성에 달려들어 호통일성에 십만 명을 나열하여 군문을 바삐 해쳐 군중에 들어 좌우를 충돌하며 군사를 짓쳐 들어가니 불의에 환을 만나 황황급급한지라.
원수 도성에서 적세를 탐지하더니 한 군사 보하되,
“지금 도적이 금산성에 들어 군사를 다 죽이고 중군장을 찾아 횡행하니 원수는 급히 와 구원하소서.”
원수 대경하여 금산성 십 리 뜰에 나는 듯이 달려들어 벽력같이 소리하며 적진을 헤쳐 중군에 들어가 조정만을 구원하여 장대에 앉히고 필마단창으로 성화같이 달려들어 장성검 지낸 곳의 천극한의 머리를 베이고 천사마 닫는 곳에 십만 군병이 팔공산 초목이 구시월 만난 듯이 순식간에 없어지니 원수 본진에 돌아와 칼끝을 보니 정한담은 어디 가고 전후 불견 되놈이라.
이때 한담이 원수를 치우고 정병만 가리어 급히 도성에 드니 성중에 군사 없고 천자는 원수의 힘만 믿고 잠을 깊이 들었다가 뜻밖에 천병만마 성문을 깨치고 궐내에 들어가 함성하는 말이,
“이봐 명제야 어디로 갈다? 팔랑개비라 비상천(飛上天)하며 두더지라 땅으로 들다? 네놈의 옥새 앗으려고 하더니 이제는 어디로 갈다? 바삐 나와 항복하라.”
하는 소리 궁궐이 무너지며 혼백이 상천하는지라. 명제 넋을 잃고 용상에 떨어져 옥새를 품에 품고 말 한 필 잡아 타고 엎더지며 자빠지며 북문으로 도망하여 변수 가에 다다르니 한담이 궐내에 달려들어 천자를 찾은즉 간데없고 황후 태후 태자 도망하여 나오거늘 호령하고 달려들어 황후를 잡아 궐문에 나와 호왕에게 맡기고 북문에 나서니, 이때 천자 변수 가에 도망커늘 한담이 대희하여 천둥 같은 소리하고 순식간에 달려들어 구척장검 번듯하여 천자의 앉힌 말이 백사장에 거꾸러지거늘, 천자를 잡아내어 마하(馬下)에 엎지르고 서리 같은 칼로 통천관(通千冠)을 깨던지며 호통하는 말이,
“이봐 들어라. 하늘이 날 같은 영웅을 내실 제는 남경에 천자시킴이라. 네 어찌 천자를 바랄쏘냐. 네 한 놈 잡으려고 십 년을 공부하여 변화무궁하니 네 어찌 순종치 아니하고 조그마한 충렬을 얻어 내 군사를 침노하니 너의 죄를 논지컨대 이제 바삐 죽일 것이로되, 옥새를 드리고 항서를 써 올리면 죽이지 아니하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네놈의 노모처자를 한 칼에 죽이리라.”
천자 하릴없어 하는 말이,
“항서를 쓰자 한들 지필(紙筆)이 없다.”
하시니 한담이 분노하여 창검을 번득이며 왈,
“용포(龍袍)를 떼고 손가락을 깨어 항서를 쓰지 못할까.”
천자 용포를 떼고 손가락을 깨물려 하니 차마 못할 즈음에 황천인들 무심하리.
이때 원수 금성산에 적진 십만 명을 한 칼에 무찌르고 바로 호산대에 득달하여 적진 정병을 씨 없이 함몰코자 행하더니 뜻밖에 월색이 희미하여 난데없는 빗방울이 원수 면상(面上)에 내려지거늘 원수 고이하여 말을 잠깐 머무르고 천기를 살펴보니 도성에 살기 가득하고 천자의 자미성이 떨어져 변수 가에 비췄거늘 대경하여 발을 구르며 왈,
“이게 웬 변이냐.”
갑주 창검 갖추고 천사마상 바삐 올라 산호편을 높이 들어 말석을 채질하며 말더러 정설(叮說) 왈,
“천사마야, 너의 용맹 두었다가 이런 때에 아니 쓰고 어디 쓰리요. 지금 천자 도적에게 잡히어 명재경각이라 순식간에 득달하여 천자를 구원하라.”
천사마는 본디 천상에서 타고 온 비룡(飛龍)이라 채질을 아니하고 정설만 하되 제 가는 대로 두어도 순식간에 몇천 리를 갈 줄 모르는데 하물며 제 임자 급한 말로 정설하고 산호채로 채질하니 어찌 아니 급히 갈까. 눈 한 번 깜짝이면 황성 밖에 얼른 지나 변수 가에 다다르니, 이때 천자는 백사장에 엎더지고 한담은 칼을 들고 천자를 치려거늘, 원수 이때를 당함에 평생 있는 기력과 일생에 지른 호통을 진력하여 다 지르니, 천사마도 평생 용맹 이때에 다 부리니, 변화 좋은 장성검도 삼십삼천(三十三天) 어린 조화 이때에 다 부리고, 원수 닫는 앞에 귀신인들 아니 울며 강산도 무너지고 하해도 뒤눕는 듯 혼백인들 아니 울리요. 혼신(渾身)이 불빛 되어 벽력같이 소리하며 왈,
“이놈 정한담아, 우리 천자 해치 말고 나의 칼을 네 받으라.”
하는 소리에 나는 짐승도 떨어지고 강신(江神) 하백(河伯) 넋을 잃어 용납지 못하거든 정한담의 혼백인들 아니 가며 간담이 성할쏘냐. 호통 소리 지내는 곳에 두 눈이 캄캄하고 두 귀가 먹먹하여 탔던 말둘러 타고 도망하여 가려다가 형산마 거꾸러져 백사장에 떨어지니 창검을 갈라 들고 원수를 바우거늘 구만 청천 구름 속에 번개칼이 언뜻하며 한담의 두 팔목이 마하에 내려지며 장성검 언뜻하며 한담의 장창대검 부숴지니 원수 달려들어 한담의 목을 산 채로 잡아 들고 말에서 내려 천자 앞에 복지하니, 이때 천자 백사장에 엎더져서 반생반사(半生半死) 기절하여 누웠거늘 원수 붙잡아 앉히고 정신을 진정한 후에 복지 주왈,
“소장이 도적을 함몰하고 한담을 사로잡아 말에 달고 왔나이다.”
천자 황망주에 원수란 말을 듣고 벌떡 일어앉아 보니, 원수 복지 하였거늘 달려들어 목을 안고,
“네가 일정 충렬이냐. 정한담은 어디 가고 네가 어찌 예 왔느냐. 나는 죽게 되었더니 네가 와서 살리도다.”
원수 전후수말을 아뢴 후에 한담의 머리를 풀어 손에 감아 들고 도성에 들어오니 이때 오국군왕이 성중에 들었다가 한담이 사로잡혔단 말을 듣고 황겁하여 도성에 들어 성중보화(城中寶貨) 일등미색(一等美色)을 탈취하고 황후와 태후 태자를 사로잡아 수레 위에 높이 싣고 본국으로 돌아가고 없는니라.
천자 원수 붙들고 대성통곡 왈,
“이 몸이 하늘께 득죄하여 나라가 망케 되었다가 충신 그대를 얻어 회복되게 되었으나 부모 처자를 되놈에게 보내고 나 혼자 살아 무엇하리. 천하를 그대에게 전하나니 그리 알라. 과인은 이제 죽어 혼백이나 호국에 들어가 모친을 만나 보면 구천에 들어가도 여한(餘恨)이 없으리라.”
하고 궐내(闕內) 백화담에 빠져 죽고저 하거늘 원수 붙들어 용상에 앉히고 여짜오대,
“소신이 충성이 부족하여 이 지경이 되었으나 이때를 당하여 신자(臣者) 도리에 호국을 그저 두오리까. 소신이 재주 없사오나 호국에 들어가 호종(胡種)을 함몰하고 황태후를 편히 모셔 돌아오리다.”
천자 원수 손을 잡고 낙루하며 부탁하되,
“경이 충성을 다하여 호국을 쳐 멸하고 과인의 노모와 처자를 다시 보게 하면 살을 베어도 아깝지 아니하리요.”
원수 배사하고 나와 정한담을 끌러 계하에 엎지르고 좌우 나졸 호령하여 온갖 형벌 갖추고 전후죄목(前後罪目)을 낱낱이 물어 왈,
“이놈 들으라. 네 자칭 신황제라 하고 날더러 천의(天意)를 모른다하더니 어찌 두 팔이 없어 내게 잡혀 왔느냐?”
한담이 참괴무언(慙愧無言)이라.
“네 자칭 십 년 공부하여 천자를 도모(圖謀)한다 하더니 어떠한 놈에게 공부하여 역적이 되었느냐?”
한담이 여쭈오되,
“소인이 불행하여 도사놈의 말을 듣고 이 지경이 되었으니 아뢸 말씀 없나이다.”
“도사놈이 어디 갔는고?”
“소인이 변수 가에 갔을 때에 호국에 들어갔을 듯하나이다.”
원수 왈,
“네놈은 날과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讎)라 진작 죽일 것이로되 내 부친의 존망(存亡)을 알고자 하느니 바른대로 아뢰라.”
한담이 다시 여쭈오대,
“소인이 죄 중(重)하야 도사의 말을 듣고 정언주부를 무함(誣陷)하여 연경의 귀양 갔삽더니 수일 전에 다시 잡아다가 항복을 받고저 하되 종시 말을 듣지 아니하는 고로 다시 호국 포판이라 하는데로 귀양 갔사오니 그간 생사는 모르나이다.”
원수 이 말을 듣고 통곡 왈,
“강희주는 죽었느냐 살았느냐?”
한담이 여쭈오되,
“강 승상도 무함하여 옥문관으로 귀양하고, 그 집 가솔을 다 잡아 오더니 중로(中路)에 야간도주(夜間逃走)하여 영릉땅 청수에 빠져 죽었다 하더이다.”
원수 모친이 회수에 봉변한 일이 한담의 소위(所爲)인 줄 모르고 강 낭자 죽은 일만 절분(切忿)하여 한담을 대칼에 베이고자 하되 부친을 만난 후에 죽이리라 하고 삼목(三木)을 갖추어 결박하여 전옥에 가두고 갑주 장검을 갖추어 천자께 하직하고 나오려 하니 천자 계하(階下)에 내려 손을 잡고 낙루 왈,
“짐의 수족(手足)을 만리 타국에 보내고 마음이 어떠할꼬. 부디 충성을 다하여 모친과 자식을 살려 수히 돌아오소, 만일 그간에 환이 있으면 뉘로 하여 살아날까.”
십 리 밖에 전송하며 만 번 당부하니 원수 청명(聽命)하고 필마단창(匹馬單槍)으로 만리 타국에 들어갈 제, 이때 호왕이 들어가며 후환이 있을까 하여 각도 각관(各道各關)에 행관(行關)하여 호국 들어오는 길에 인가를 없애고 물마다 배를 없애어 인적을 통치 못하게 하였는지라, 원수 전장에 고생하며 음식을 전폐한 날이 많은 중에 부친의 소식을 알고저 하여 침식이 불안하던 차에 호국 수만 리를 주점 없이 지내오니 기운이 반감하였는지라. 행역이 노곤하여 유주에 득달하여 자사를 잡아내어 문죄(問罪) 왈,
“네 이놈 세대로 국록지신(國祿之臣)으로 국가 불안하되 네 몸만 생각하고 국사를 돌보지 아니하며, 또한 정한담의 말을 듣고 유 주부를 네 골에 귀양하였다 하더니 어디 계시뇨?”
자사 황겁하여 사죄 왈,
“소인도 국록지신으로 어찌 무심하리까마는 호병이 남경에 가는 길에 소인 고을에 달려들어 군사와 양식을 탈취하고 소인을 죽이려 하기로 소인이 도망하여 목숨만 살아났으나 본디 재주 없고 적수단신(赤手單身)이라 할 바를 몰라 다만 국가 어찌된 줄을 모르더니 수일 전에 소식을 들어본즉 호병이 승전하여 황후 태후 태자를 사로잡아 가노라 하기 황황망극하던 차에 장군이 와 계시니 황송하오나 성명은 뉘시며 무슨 일로 유 주부를 찾나이까?”
원수 비감하여 왈,
“나는 이 고을 적거하신 유 주부의 아들이러니 부모 원수 갚으려고 적진에 들어가 천자를 구완하고 정한담 최일귀를 한칼에 베이고 오국정병을 일시에 무찌르고 천자를 모셔 환궁하였더니 뜻밖에 오국왕이 들어와 나를 속여 도성을 엄살하고 황후를 사로잡아 갔는 고로 북적을 함몰하고 황후를 모셔오려고 가는 길에 들렀노라.”
자사 이 말을 듣고 계하에 내려 백배 치사하고 주육을 많이 내어 대접하고 십 리 밖에 전송하니라.
원수 유주를 떠나 호국에 다다르니 풍설(風雪)은 분분하고 도로는 험악하여 인적이 없는지라.
각설, 이때 호왕이 십만 병을 거느려 남경에 갔다가 한담이 사로잡혔단 말을 듣고 도성에 들어가 황후 태후 태자를 사로잡고 성중 보화와 일등미색을 탈취하여 본국으로 돌아와 승전곡(勝戰曲)을 울리며 잔치를 배설하고 수일 즐긴 후에 황후 태후 태자를 잡어내어 계하에 엎지르고 나졸이 좌우에 늘어서서 검극을 벌렸는데 호왕이 인검으로 난간을 치며 태자를 호령하여 왈,
“네 이놈, 전일은 네 아비 힘을 믿고 범람(氾濫)히 동궁이라 하였거니와 이제는 과인이 하늘께 명을 받아 천자를 항복받고 네 조모(祖母)를 사로잡아 왔으니 만승천자(萬乘天子)가 나밖에 또 있느냐. 네 바삐 항복하여 나를 도우면 죽이지 아니하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너의 모자(母子)를 북해상(北海上)에 던지리라.”
이렇듯이 호령하니 군사의 엄장함은 염왕국(閻王國)이 가까운 듯, 호왕의 엄한 위풍 단산맹호 장을 치는 듯, 황후 태후 정신이 아득하여 삼 인이 서로 목을 안고 계하에 엎더져서 아무리 할 줄 모르더니, 이때의 태자의 년(年)이 십삼 세라. 호왕을 호령하여 하는 말이,
“네 이놈 역적놈아, 한갓 강포만 믿고 외람히 남경을 침노하여 이 지경이 되었으나 언감생심(焉敢生心)에 황제를 질욕(叱辱)하며 나를 항복받아 네 신하를 삼을쏘냐. 군신지분의(君臣之分義)를 논지컨대 황제는 만민지부(萬民之父)요, 황후는 만민지모(萬民之母)라. 너는 만고역적(萬古逆賊)놈이라.”
하니 호왕이 분노하여 나졸을 재촉하니, 일시에 달려들어 황후 태후 태자를 잡아내어 온갖 형벌을 다 갖추고 수레 위에 높이 싣고 동문대 도상에 나올 적에 기치검극(旗幟劍戟)을 삼대같이 세웠는대, 총융대장 높이 앉아 자객(刺客)을 상급(賞給)하고 검술을 희롱할 제, 황후 태후 태자 수레에서 내려 황후는 태후의 목을 안고 태자는 황후의 목을 안고 삼 인이 한 몸 되어 백사장 너른 들에 엎더져 땅을 허비며 방성통곡하는 말이,
“전생에 무슨 죄로 백발노구 홍안소부(紅顔少婦) 어린 손자 앞세우고 되놈에게 잡혀 와서 한 칼 끝에 다 죽으니 북방천리 멀고 먼 길에 무주고혼(無主孤魂) 된단 말가. 피골상연(皮骨相連) 이내 몸은 되놈에게 자식 잃고 청춘소부 내 며느리 되놈에게 낭군 잃고 혈혈단신(孑孑單身) 내 손자 되놈에게 아비 잃어 만리호국(萬里胡國) 험한 땅에 뉘 보려고 예 왔다가 세 몸이 한 몸 되어 자객 손에 죽게 되니 천만 년을 지내 간들 이런 변을 다시 볼까. 광대한 천지간에 흉악하고 불칙한 게 우리 셋의 팔자로세. 도적에게 황성 잃고 우리 아들 정한담을 피하여 북문으로 도망터니 죽었는가 살았는가 혼백이나 둥둥 떠서 늙은 어미 죽는 줄을 귀신이나 알련마는 창망한 구름 속에 사람 소리뿐이로다. 유충렬은 어디 가고 날 살릴 줄 모르는가. 한심하다. 형산신령 인선(仁善)한 내 아들을 남경에 점지하여 용상(龍床) 위에 앉힐 적에 그 어미는 무슨 죄로 이 지경이 되게 하며, 만고영웅(萬古英雄) 유충렬은 대명국에 점지할 제 어떤 인군(人君) 섬기려고 나의 손자 죽는 줄을 모르느냐. 비나이다. 비나이다. 형산 신령 대명국 황성에 급히 가 우리 유 원수를 찾아 내 말을 전하되 대명국 황태후, 불쌍한 며느리와 어린 손자 목 안고 기치창검 나열하며 백포장(白布帳) 장막 안에 자객이 벌렸는데 세 몸을 한데 놓고 금일 오시(午時)만 지내면 무죄한 세 목숨이 창검 끝에 달렸으니 한때 속히 전해 주오.”
이렇듯이 통곡하니 피 같은 저 눈물은 소상강 저문 비가 반죽(斑竹)에 뿌리는 듯, 가련하다 만승황후 시년(是年)이 이십팔 세라 옥빈홍안(玉鬢紅顔) 고운 얼굴 월태화용 귀한 몸이 여러 날 잠 못 자고 굶었으니 형용이 초췌한 중에 호왕이 잡아낼 제 흉악한 군사놈이 억지로 끌어내니 유혈이 만면(滿面)하고 의상(衣裳)이 남루(襤褸)하니 청천에 밝은 달이 흑운(黑雲) 속에 잠겼는 듯, 녹수(綠水)의 홍연화(紅蓮花)가 흑비를 머금은 듯 가련하고 슬픈 경상 차마 보지 못할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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