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 현대역 50선

유충렬전_05(끝)

pitagy 2023. 10. 2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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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天運)이 순환(循環)하여 대명(大明)이 밝았으니 만고에 어진 영웅 뉘 집에 났단 말가. 동성문 다리 안에 유 상공의 집이로다. 역적이 때 모르고 뽕나무 활 뽕나무 활 - 남자가 큰 뜻을 품고 성공하려는 것.
을 매니 원수의 가진 칼이 사해에 밝았도다. 승전곡(勝戰曲) 한 소리에 함몰도적하여 천하가 태평하니 호국에 죽은 군친(君親) 군친 - 임금과 어버이.
 고향에 살아오고 여염(閭閻)에 있는 처자 부모 함께 동락(同樂)하니, 우리 인군 덕이 높아 일도춘광호시절(一到春光好時節) 일도춘광호시절 - 한바탕 봄빛이 비친 좋은 시절.
에 백화(白花) 만발 피었으니 화전하는 백성들이 뉘 아니 송덕하리. 우리 유 원수 부모 만나 다남다녀(多男多女) 다남다녀 - 아들 딸 많이 낳으라는 뜻.
하옵소서.

 이렇듯이 즐겨 하니 원수는 강 낭자를 생각하여 영릉성중에 들어오니 이 땅은 승상의 고토(故土) 고토 - 고향 땅.
라. 슬픈 마음을 어찌 다 측량하리요. 객사에 숙소하고 월계촌 소식을 알고자 하여 사오 일을 유련(留連) 유련 - 계속해서 머무름.
하는지라.

 각설, 이때 강 낭자 목숨을 도망하여 청수 가에 오다가 모친은 청수에 빠져 죽고 영릉고을 관비에게 잡혀와 머무나 천비(賤婢)하는 행사가 고금에 다를쏘냐. 낭자를 만단 개유(開諭)하여 태수의 수청을 드리고저 하여 수양딸을 삼은 후에 무수히 훼절코자 한들 빙설 같은 맑은 절개 일시를 변하며 일월같이 밝은 마음 궁곤(窮困)타고 변할쏘냐. 이 꾀로 모피(謀避) 모피 - 꾀를 써서 피함.
하고 저 꾀로 모피하니 관장(官長)에게 욕도 보고 관비에게 매도 많이 맞으니 가련한 그 정상은 차마 보지 못할네라.
 이때에 관비 딸 하나가 있으되 제 몸은 미천하나 마음은 어질어 매일 강 낭자를 불쌍히 여겨 그 절개를 칭찬하여 제 모(母)를 만류하고 낭자를 구완하며 매양 몸을 바꾸어 제가 수청하고 낭자는 구완하여 살리는지라.
 이때, 유 원수 동헌(東軒)에 좌기하고 사오 일 유련할 제 관비 생각하되,
 ‘원수는 호걸이요 낭자는 미색이라. 이런 때를 당하여 수청을 드렸으면 원수의 혹(惑)한 마음 천만 냥(千萬兩)을 아낄쏘냐.’
 급히 들어가 행수(行首) 행수 - 여러 사람의 우두머리.
 현신(現身) 현신 - 높은 분에게 들어가 뵈임.
하고 이날 밤에 낭자를 보내고저 하더니 제의 딸 연심이 또 이 기미를 알고 낭자더러 왈,
 “금야에 변을 당할 것이니 그대 생각하여 사양치 말고 들어가면 내가 중로에 있다가 대(代)로 들어갈 것이니 그리 알고 있으라.”
 과연 그날 밤에 관비 낭자를 데리고,
 “구경가자.”
하며 동헌으로 가거늘 낭자 웃으며 왈,
 “이제는 염려 말고 나가라. 원수의 수청이야 사양을 어찌하리요.”
 관비 대희하여 왈,
 “네 몸이 과히 높으다. 이 고을 관장은 무수히 지나되 종시 허락지 아니하더니 남경 대사마 도원수 겸 위국공의 수청은 사양치 아니하니 인물이 잘나고도 볼 것이다. 마음도 높으고 소원도 높도다. 우리도 소년시절에 월계촌 강 승상이 하남 절도사로 와 계실 제 일등미색 삼백여 명 중에 나 혼자 수청들어 금은보화를 많이 받았더니 세월이 원수로다.”
하며 이렇듯이 비양하고 나가는지라.
 이때 연심이 제 어미 나감을 보고 낭자를 내보내고 제가 들어가니 원수 등촉을 밝히고 낭자를 생각하여 금낭을 끌러 낭자의 글을 볼 제 일자일체(一字一涕) 일자일체 - 한 글자에 한 번씩 눈물을 흘린다.
하니 슬픈 한심 절로 난다.
 ‘삼경야월(三更夜月)은 꽃가지에 비추는 듯, 공산(空山) 두견 울지말라. 너는 뉘를 생각하여 장부 간장 다 녹이냐, 낭자는 어디 가고 속절없는 글 두 귀만 금낭 속에 들었느냐. 여관한등독불면(旅館寒燈獨不眠)하니 객심하사(客心何事)로 전처연(轉凄然) 여관한등독불변하니~전처연 - 연관 쓸쓸한 등불 밑에 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나그네 마음은 문슨 일로 구슬픈가. 당대 시인 고적이 지은 ‘제야작’ 시의 일부.
은 날로 두고 이름이라. 일락장사추색원(日落長沙秋色遠)하니 부지하처조상군(不知何處弔湘君) 일락장사추색원하니 부지하처조상군 - 해는 장사에 지고 가을 빛은 먼데 어느 곳에서 상국(아황․여영)을 조상하리. 이백이 지은 시의 일부.
은 낭자 볼 길 없음이라. 옛날 사마장경(司馬長卿) 사마장경 - 명(名)은 상여. 자(字)는 장경. 한대의 문인. 탁문군을 봉구황곡(鳳求凰曲)이란 노래로 인연맺었다는 이야기가 있음.
은 초년(初年)에 곤궁타가 문장(文章) 부귀(富貴) 겸전(兼全)하여 고향에 돌아오니 그 아내 탁문군(卓文君) 탁문군 - 한대 여류문학가. 사마상여와 인연을 맺은 후, 처음에 곤궁하여 쇠코잠방이를 입고 술장사를 하였다고 함.
이 문 밖에 바삐 나와 손을 잡고 들어가고 낙양 땅에 소진(蘇秦)이는 현순백결(懸鶉百結) 현순백결 - 조각조각 기운 누더기 옷.
 몸이 되어 곤곤(困困)히 지내더니 육국정승인(六國政丞印)을 차고 고향에 돌아오니 그 아내 전지도지 나와 인도하여 들어가되, 대명국 유충렬은 초년에 부모 잃고 십생구사(十生九死) 십생구사 -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
 살아나서 도원수(都元帥) 대승상(大丞相)에 만리타국에 승전하고 죽은 부모 살려내어 고향에 돌아온들 청수에 죽은 낭자 어찌 와서 맞아가며 소소백발 강 승상을 무엇이라 위로할까.’
 이렇듯이 한탄하고 그 밤을 지내는지라.
 이때 낭자 연심을 대로 보내고 침실에 돌아와 원수를 생각하야 자탄(自歎)하고 잠 못 들어 생각하되,
 ‘원수의 성명을 들으니 나의 낭군과 동성동명(同姓同名)이라, 낭군이 적실하게 되면 응당 월계촌에 들어가 우리 집 소식을 물으련만 월계촌을 아니 가니 답답하고 원통하다. 연심이 어서 나오면 진위를 알아보리라.’
하고 낭군이 주던 글을 보며 자자(字字)이 낙루하며,
 ‘구천에 만나자고 말씀이 있었더니 모진 목숨 살아나고 낭군은 죽었도다. 살기 곧 살았으면 대명국 도원수를 나의 낭군밖에 할 이 없건마는 몰라 보니 답답하다.’
 이튿날 연심이 나오다가 제 어미를 만나니 관비 그 기미를 알고 대로하여 원수전에 아뢰고 낭자와 연심을 죽이고자 하여 급히 들어가 문안(問安)하고 여쭈오되,
 “소인의 딸이 얼굴이 절색이요 태도 있는 고로 상공전에 수청을 보냈더니 제 몸은 피하고 다른  년이 대로 들어 갔사오니 두 년을 치죄(治罪) 치죄 - 죄를 다스림.
 하옵소서.”
 원수 대로하여,
 “대로 온 년을 나입(拿入)하라!”
 연심이 잡혀 들어 계하에 복지하니 원수 문왈,
 “너는 무슨 욕심으로 대신을 잘 다니느냐, 죽을 데도 대로 갈까?”
 연심이 여쭈오되,
 “소녀 비록 천비오나 일생에 수절(守節)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옵더니 수년 전에 어미 외촌(外村)에 갔다가 어떠한 여자를 데려다가 수양딸을 삼아 동네마다 수청을 드리고자 하되, 그 여자 굳은 절개 청천에 일월 같고 삼동(三冬)에 촛불같이 변할 길이 없는 고로 소녀 매양 구제하옵더니 마침내 상공이 행차하옵심에 그 여자를 구완하여 대로 왔사오니 죄를 주옵소서.”
 원수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절로 비감하여 의심이 나는지라, 다시 왈,
 “그 여자의 성명이 무엇이며 절개 있다 하니 뉘 집 여자냐?”
 연심이 대왈,
 “그 여자 소녀와 사오 년을 동거하되 종시 성명을 모른다 하고 뉘 집이란 말을 아니 하더이다.”
 원수 고이 여겨 왈,
 “적실히 그러할진대 바삐 입시하라.”
 이때 낭자 연심이 잡혀 갔단 말을 듣고 신세를 자탄하더니 뜻밖에 관비 십여 명이 나와 잡아다가 계하에 복지하니 원수 창문을 열고 낭자의 상을 보니 숙면(熟面)인 듯하고 심신이 비감하여 자세히 보니 의상은 남루(襤褸)하나 기생(妓生)되기 생심 밖이요 천인 자식 아깝도다. 원수 소리를 나직이 하여 낭자더러 왈,
 “거동을 보니 천인 자식이 아니요. 여자의 말을 들었거니와 수절을 한다 하니 뉘 집 자손이며 낭자는 누구건대 청춘 소년의 수절을 하며 무슨 일로 저리 되어 관비 양여자가 되었는지 진정을 은휘(隱諱) 은휘 - 숨기어 꺼림.
치 말고 날더러 이르면 알 일이 있으리라. 말을 자상히 하라.”
하니 이때 낭자 계하에 복지하여 원수의 말을 들음에 낭군과 이별할 때 하직하고 가던 말이 두 귀에 쟁쟁하여 일분도 다름이 없는지라. 낭자 전일은 도망하여 왔기로 성명 거주를 속였더니 마음이 자연 비감하여 진정으로 여쭈오되,
 “소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 골 월계촌 사는 강 승상의 무남독녀(無男獨女)옵더니 부친이 만리 연경에 귀양간 유 주부를 위하여 상소하였더니 만고역적 정한담이 충신을 모함하여 승상을 옥문관에 귀양하고 소녀의 모녀를 잡아 궁비 속공하려 하고 금부도사 와 잡아갈 제, 청수에 야간도주하여 모친은 물에 빠져 죽고 소녀도 죽으려 하더니 영릉관비 외촌에 갔다 오는 길에 데리고 제 집에 와 험악이 무수하되 연심의 힘을 입어 이때까지 살았으나 오늘은 이 말을 원수전에 고하고 하릴없이 자결코저 하나이다.”
 원수 이 말을 듣고 당에 뛰어 내려서며,
 “이게 웬 말인가.”
 영릉 태수 바삐 불러 강 승상을 오시라 하니라.
 이때 강 승상이 처자를 생각하여 잠을 못 자니, 몸이 곤하여 졸더니 뜻밖에 원수 오시란 말에 놀래어 들어오니 원수 왈,
 “이게 강 낭자 아니오니까. 강 낭자 살아왔나이다.”
 승상이 이 말을 듣더니 정신이 아득하여 천지가 캄캄한지라. 원수 이별할 때 내어 주던 표를 내어 놓고 상고(相考)하니 일호(一毫)도 의심이 없는지라. 승상이 낭자의 목을 안고 궁글며 왈,
 “내 딸 경화야, 청수에 죽었다더니 혼백이 살아왔냐. 꿈이냐 생시냐. 너의 낭군 유충렬이 왔으니 소식 듣고 찾아왔냐. 우리 집이 소(沼)가 되어 양류청청(楊柳靑靑) 푸른 가지 빈 터만 남았으니 슬픈 마음 어찌 다 진정하리.”
 원수 낭자를 보고 하는 말이며 세세정담(細細情談)을 어찌 다 기록할까.
 이때 장 부인이 내동헌(內東軒)에 있다가 이 기별을 듣고 급히 나와 보니 낭자 고부지례(姑婦之禮) 고부지례 -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예.
로 문안하고 살아난 말씀을 자상(仔詳)히 하니 장 부인이 손을 잡고 왈,
 “세상 사람이 고생이 많다 하나 우리 고부 같을쏘냐.”
 이때 낭자 데려간 관비 혼백이 상천(上天)하고 간장이 녹는 듯, 원수 동헌에 높이 앉아 관비를 잡아들여 수죄 왈,
 “너를 죽일 것이로되, 너 같은 천기(賤妓)년이 사람을 알아볼쏘냐. 청수에 가 낭자 구한 일로 방송하나니 덕인 줄 알라.”
 연심을 불러 무수히 치사하고 보내려 하니 낭자 곁에 앉았다가 왈,
 “연심은 날과 백년은인이니 일시 치사뿐 아니라 평생을 한가지 지내고저 하니 황성으로 데려가사이다.”
 원수 그 말을 옳이 여겨 연심을 불러,
 “부인을 착실히 모시라.”
 연심이 황공하여 하더라.
 원수 전후 사연을 낱낱이 기록하여 나라에 장계하고 길을 떠나올새 장 부인이 금덩을 타고 강 낭자와 조 낭자는 옥교를 타고 좌우로 모시고 강 승상은 수레 타고 오국 사신이 모셨는데, 원수는 일광주 용인갑에 장성검을 높이 들고 대완마상 높이 앉아 오마대로 행군하여 완완히 나오니 그 거동과 그 영화는 천고에 처음이라.
 게양역을 지내어 청수 가에 다다르니 소 부인 죽던 곳이라. 원수 승상을 위하여 영릉 태수 바삐 불러 제물을 장만하여 승상을 주인 삼고 조 낭자는 집사 되어 원수는 축관(祝官)되고 독축하며 통곡하는 말이 회수에 모친 제사할 때와 다름이 없더라.
 제를 파한 후에 행군하여 나올 제 이때 천자와 황태후며 연왕과 조정에서 충렬을 가달국에 보내고 주야 생각하며 장 부인을 찾아오는가 하여 일야(日夜) 한탄하더니 뜻밖에 원수의 장계를 보고 즐거운 마음 측량 없으며 장안 백성들이 이 말을 듣고 각각 자식을 보려 하고 다투어 나오더라.
 천자와 태후와 연왕이 백 리 밖에 나와 맞을 새 원수의 위엄을 보니 서천 삼십육 도며 남만 오국이며 금은 예단과 일등미색들이 차례로 말을 타고 오국 사신이 선봉되어 낭자하게 들어오고 그 가운데 금덩 옥교 떠오는데 강 낭자는 좌편이요 조 낭자는 우편이라. 좌우 청정(靑旌) 청정 - 푸른 깃발.
 고였는데 금수단(錦繡緞) 양산(陽傘) 양산 - 비단으로 만들어 햇빛을 가리게 한 물건.
 대는 반공에 솟았도다.
 강 승상이 수레 위에 높이 앉아 오며 군사 전후에 나열하고 그 뒤에 따르는 이 십장홍모(十杖紅氈) 십장홍모 - 열 장이 되고 붉은 털이 달림.
 사명기(司命旗)는 한가운데 세워 오고 용전(龍旜) 용전 - 용의 그림을 그린 기.
 봉기(鳳旗) 봉기 - 봉황새의 그림을 그린 기.
 대장기(大將旗)며 기치창검(旗幟槍劍) 삼천 병마 전후에 작대(作隊)하고 승전고(勝戰鼓) 승전고 - 전쟁의 승리를 알리는 북소리.
와 행군고(行軍鼓)는 원근산천에 진동하며, 도원수는 일광주 용인갑에 장성검 높이 들고 천사마 비껴 타고 황룡수(黃龍鬚)를 거스리고 봉의 눈을 반만 떠서 군사를 재촉하니 웅장한 거동은 일대 장관(壯觀)이요 천추에 표문(表聞) 표문 - 나타나서 여러 사람에게 들려 알려짐.
이라.
 이때 장안 만민이 남적에게 잡혀 갔던 며느리며 딸이며 동생들이 본국에 돌아온단 말을 듣고 호산대 십 리 뜰에 빈틈없이 마주 나와 각각 만나 옥수(玉手) 나삼(羅衫) 부여잡고 그리던 그 정곡(情曲) 못내 즐겨 하여 울음소리 웃음소리 반공에 뒤섞이어 호산대가 떠나갈 듯 원수를 치사하고 장 부인을 치사하는 소리 낭자하여 요란하고, 금산성하 다다르니 천자와 황태후 옥연(玉輦)에 바삐 내려 장막 밖에 나서니 원수 갑주를 갖추고 군례(軍禮)로 현신하니 천자와 태후 원수의 손을 잡고 못내 치사 왈,
 “과인의 수족을 만리타국에 보내고 주야 염려하더니 이렇듯이 무사히 돌아오니 즐거운 마음 어찌 다 칭찬하며 회수에 죽은 모친 데려온다 하니 만고에 없는 일이며 옥문관에 강 승상과 청수에 죽은 강 낭자를 살려오니 천추에 드문 일이라. 그대의 은혜는 백골난망(白骨難忘)이라. 그 말이야 어찌 다 하리오.”
 황태후 원수를 치사한 후에 강 승상을 부르시니 승상이 바삐 들어와 복지하니, 천자 내려와 승상의 손을 잡고 위로 왈,
 “과인이 불명하여 역적의 말을 듣고 충신을 원방에 보냈으니 무슨 면목으로 경을 대면하리오. 그러하나 왕사(往事)는 물론(勿論)하오.”
 이때 황태후 승상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야 어찌 다 성언(成言)하리.
 이때 연왕이 다른 사처(私處)에 있다가 장 부인이 금덩을 타고 옴을 보고 마음이 건공에 떠서 충렬이 나오기를 고대하더니 원수 천자께 물러나와 부왕전에 복지 주왈,
 “불효자 충렬이 남적을 소멸하고 오는 길에 회수에 와 제사하옵다가 천행으로 모친 만나 왔나이다.”
 연왕이 반가움을 측량치 못하여 왈,
 “너의 모친이 어디 오느냐?”
 이때 장 부인이 모장(毛帳) 모장 - 장막.
 밖에 있다가 주부의 말소리를 듣고 반가운 마음 어떻다 할 수 없어 여광여취(如狂如醉) 들어가니 연왕이 부인을 붙들고 왈,
 “그대 일정 장 상서의 따님인가. 멀고 먼 황천길에 죽은 사람도 살아오는 법이 있는가. 회수 창파 만경중에 백골이 되었을 제 어떤 사람이 살려 왔나. 뉘 집 자손이 모셔왔나. 충렬아 네가 일정 살려 왔나.”
 북방 천리 만리 호국에 잡혀 죽게 된 유 주부와 만경창파 회수중에 십 년 전에 잃은 장씨 다시 만다 즐길 줄과 칠 세 자식 환란중에 잃었더니 다시 만나 영화 볼 줄 몽중이나 생각할까.
 장 부인이 석장동 마철의 집에 잡혀 갔던 말이며, 옥함을 가지고 야간 도망하여 노구 집에서 환(患) 만나던 말이며, 옥함을 물에 놓고 죽으려 하다가 활인동 이 처사의 집에 살아난 말을 낱낱이 설화하며 즐기니 그 정곡은 측량치 못할네라.
 원수 곁에 앉았다가 왈,
 “소자 가달국에 갔을 제 적진 선봉이 마철의 삼형제라 한칼에 베어 원수를 갚았나이다.”
 연왕과 부인이 못내 즐기더라.
 천자를 모시고 성중에 들어올 새 자식 만나 치하하는 소리며, 만조제신(滿朝諸臣) 하례(賀禮)하는 말을 어찌 다 기록하리.
 이때 황후 태후 강 낭자를 입시하여 전후 왕사를 낱낱이 물을 제 부인이 고생한 말을 낱낱이 하고 서로 울며 장 부인이 치사하기를 마지 아니하더라.
 이때 원수가 천자와 부왕을 모셔 황극전에 전좌하시고 오국사신 예를 받아 문목수죄(問目數罪) 문목수죄 - 죄목을 따져 물음.
한 연후에 옥관도사를 잡아들여 계하에 엎지르고 수죄 왈,
 “간사한 도사놈아, 네 천지조화지술(天地造化之術)을 배워 정한담을 가르쳐 신기한 영웅이 황성 내에 있는 줄은 알고 광덕산에 살아 나서 너 죽일 줄을 모르느냐. 네 전일 정한담더라 하기를 천재일시(千載一時) 천재일시 - 천년에 한 번 있는 시기.
라 급격물실(急擊勿失)하라더니 어찌 조그마한 유충렬을 못 잡아서 너희 놈들이 먼저 다 죽느냐?”
 도사 여쭈오되,
 “패군지장(敗軍之將)은 불가이어용(不可而語勇) 불가이어용 - 가히 용맹을 말할 수 없다.
이라 하니, 차막비천명(此莫非天命) 차막비천명 - 이것은 모두 하늘이 정한 명이다.
이라 무슨 말씀 하오리까마는 소인이 신기한 술법을 배워 전장에 나올 제 사해신장(四海神將)이며, 대명국(大明國) 강산신령(江山神靈)과 천귀만신(千鬼萬神)과 이매망량 이매망량 - 도깨비의 정령들.
 어두귀면지졸(魚頭鬼面之卒) 어두귀면지졸 - 물고기 머리에 귀신 얼굴을 한 귀졸의 무리.
과 천지개벽(天地開闢) 후에 신장 귀졸을 모두 다 불러내어 지위간에 넣어 두고 승천입지(昇天入地)하며 성산성해(成山成海) 성산성해 - 산을 만들고 바다를 이룸.
하며 변화무궁터니 그 중에 유독 서해 광덕산 백룡사에 있는 노승과 남해 형산 화선관이 소인 영(令)을 쫓지 아니하기로 고이 알었삽더니 전일 원수 접전하시는 법을 보오니 갑주 창검도 천신의 조화거니와 백룡사 노승은 원수 우편에 옹위하고 남악 형산 화선관은 좌편에 시위하였으니 소인인들 어찌하오리까. 주판지세(走坂之勢) 주판지세 - 인력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어 되어 가는 대로 맡겨 두는 일.
로 이리될 줄을 알았으나 죽사온들 무슨 한이 있사오리까.”
 원수 마음에 그놈의 재주를 탄복하고 군사를 재촉하여 장안시에 처참한 후에 오국사신을 각각 돌아 보내고 황성 동문 밖 인가(人家)를 다 헐어 별궁을 지은 후에 직첩을 돋울새, 산동 육국에서 들어오는 결총(結總) 결총 - 토지에 매기는 못의 전부.
은 모두 다 연왕에게 부치고 원수로 남평 여원 양국 옥새를 주어 남만 오국을 차지하여 녹을 부쳤으되 대사마 대장군 겸 승상 인수(印綬)를 주어 국중만사(國中萬事)를 모두 다 맡겨 슬하에 떠나지 못하게 하고 장 부인으로 정열부인(貞烈夫人) 겸 동궁야후(東宮耶后) 동궁야후 - 동궁의 어머니의 존칭.
 연국왕후를 봉하여 경양궁에 거처하게 하고 강 승상으로 달왕 직첩을 주어 빈시자위(賓師之位) 빈사지위 - 손님으로 대접하는 지위.
에 있게 하고 강 부인으로 하여금 정숙부인 겸 동궁후 언성왕후를 봉하여 시녀 삼백에 강 승상의 위장 위장 - 호위하는 장수.
 삼아 봉황궁에 거처하고 활인동 이 처사로 간의태부(諫議太夫) 도훈관(都訓官)에 이부상서(吏部尙書)를 겸하여 육조(六曹)를 다스리게 하고 영릉 관비 연심으로 남평왕의 후궁을 봉하여 인성왕후 직첩을 주어 봉황궁에 강 부인을 모시고 그 남은 제장은 차례로 벼슬을 돋우니라.
 이때 남국에 잡혀 가 강 승상을 부모같이 섬기던 여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술 한잔 받아 들고 원수전에 자례(自禮)하던 노인의 딸이라. 그 노인을 불러 상면한 후에 조 낭자로 남평왕의 우부인을 봉하고 그 오래비로 총융대장(總戎大將)을 삼아 그 아비를 봉양하게 하니 상하(上下) 인민(人民)이 송덕(頌德)하는 소리 천지 진동하니 그 아니 태평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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