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삶에 대한 고찰

가장 먼 길을 돌아, 나에게로 돌아오는 법

pitagy 2026. 4. 2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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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항해일지를 쓰지 않는 선장처럼 살아간다. 뚜렷한 목표 의식 없이 나아가기도 하지만, 오직 저 멀리 보이는 하나의 등대, ‘목표’라는 이름의 불빛만을 향해 쉼 없이 노를 젓기도 한다. 파도가 얼마나 거셌는지, 바람의 방향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밤하늘의 별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돌아볼 겨를이 없다. 그러다 문득 짙은 해무 속에서 등대의 불빛이 사라지면, 그제야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망연자실한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심지어 이 배의 주인이 누구였는지조차 희미해지는 순간이다.

숨 가쁘게 달려온 길의 끝에서 이토록 자주 방향을 잃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불확실한 안개를 견디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명확한 답이 없는 모호한 상황을 회피하고, 어떻게든 하나의 결론을 내리고자 하는 마음,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종결 욕구’라 부르기도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영원한 질문의 막막함 앞에서, ‘이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이라는 명쾌한 답을 서둘러 붙잡아 버리는 것이다. 때로는 사회나 조직이 제시하는 ‘성스러운 대의’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기도 한다. 에릭 호퍼의 통찰처럼, ‘원치 않는 자아’의 복잡함과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대한 목표의 부속품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개인의 고뇌는 희석되고, 나는 안전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구원이 아니라, 가장 정교한 형태의 자기소외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낯선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를 멈추고 다시 나만의 항로를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그 지도는 가장 가까운 곳, 바로 우리 자신의 과거 속에 있다. 한 교육 자료는 우리에게 잊고 있던 방법을 알려준다. 바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바라던 것을 접고 자신만의 꿈을 위하는 길을 택했던 과거의 나, 그 선택의 기로에 섰던 나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상상을 해보는 일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선택을 후회할지 모르지만, 분명 그 시절의 나는 자신만의 간절한 이유와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우리는 그 최초의 마음, 선택의 순간에 빛나던 눈빛을 너무 오래도록 잊고 지냈다.

이 내면의 대화는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말한 자아실현의 과정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그는 자아실현을 이룬 이들은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스스로에게 정직하며,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었다고 설명한다. 인생의 사명 같은 거창한 것뿐만 아니라, 어떤 신발을 신어야 기분이 좋은지와 같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아는 섬세한 자기 이해가 그 바탕에 있었다. 우리가 과거의 나와 나누는 대화는 바로 이 내면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과정이다. 맹목적인 목표가 내 목소리를 잠식하기 전, 순수하게 ‘나’의 바람을 따랐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지금의 나를 비추어 보는 성찰의 시간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위대해질 가능성이 두려워, 거짓된 겸손 뒤에 숨어 낮은 목표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매슬로가 지적한 ‘요나 콤플렉스’처럼, 진정한 내가 될 기회 앞에서 뒷걸음질 쳤을 수도 있다. 과거의 나와 마주하는 일은 바로 이 비겁함과 정직하게 대면하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대면의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목표는 나의 주인이 아니라, 내가 나다움을 표현하는 도구여야 한다는 것을.  하늘 높이 날아오르면서도 두 발은 여전히 나라는 땅을 굳건히 딛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 더 빨리 노를 저으려 애쓰지 않아도 좋다. 잠시 노를 내려놓고, 눈을 감고, 가장 오래된 친구이자 가장 정직한 조언자인 과거의 나에게 조용히 물어보라. 우리는 왜 이 항해를 시작했었느냐고. 그 대답 속에 당신이 잃어버렸던 별자리와 나침반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테니 말이다.

오늘 밤, 잠들기 전 아주 잠시, 먼지 쌓인 과거의 일기장을 넘겨보는 것은 어떨까. 그 시절의 당신은 지금의 당신에게, 어떤 목소리로 무엇을 묻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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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적 종결 욕구 :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아리에 크루글란스키(Arie Kruglanski)가 제안한 개념으로, 어떤 정보를 접할 때 반증될 여지 없는 확고 불변의 최종 결론을 얻고자 하는 욕구를 뜻한다. 대량의 정보 속에서 일종의 인지적 과부하(cognitive overload)가 발생하고, 이러한 과부하를 해소하기 위해서 방향과 맥락을 잡아 주는 길잡이를 바란다는 것이다.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 : 자신의 잠재력을 두려워하여 성장을 회피하거나, 성공과 책임감을 피하려는 심리적 도피 현상. 성경 속 요나가 사명을 피해 도망친 이야기에서 유래했으며, 아브라함 매슬로우가 정립한 개념으로, 실패뿐만 아니라 성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스스로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현재의 안온함(모태 귀소본능)에 머물려는 경향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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