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눈물과 강철의 서곡(序曲): 여우 사냥과 잘못된 전설
태석이 피를 토하듯 배신을 외친 순간, 평화롭던 평원은 순식간에 함성과 강철이 부딪히는 지옥으로 변했다.
"인간의 적, 구미호를 벌하라! 여우 사냥을 시작한다!"
산등성이를 새까맣게 메운 수만의 병사들이, 괴성을 지르며 쏟아져 내려왔다. 그들의 갑옷에는, 구미호들의 영적인 감각을 마비시키는 흑요석 부적이 달려 음산한 빛을 뿜고 있었다.
구미호 일족은 완전한 혼란에 빠졌다. 불과 몇 초 전까지, 역병에 시달리는 인간들을 구원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정화 의식을 준비하던 그들이었다.
"네 이놈, 태석! 어찌하여…!"
아란의 절규는 수만 병사의 함성에 묻혔다.
인간들의 공격은 치밀하고 잔인했다. 그들은 태석에게 전수받은 대로, 각 구미호의 능력을 역이용하는 주술 무기를 정확하게 사용했다.
치유사 다솜은 가장 먼저 무력화되었다. 병사들이 던진 '위선의 거울(僞善鏡)' 수십 개가 그의 주변에 떨어져 깨졌다. 거울 조각들은 주변 병사들의 마음을 왜곡하여, 공포에 질린 병사의 마음을 광적인 분노로, 살의에 찬 병사의 마음을 처절한 슬픔으로 비춰냈다.
다솜의 영혼은 갈가리 찢기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는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공감'이, 이제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멀리서 들리는 병사의 함성이 '저들을 죽여라!'라는 격렬한 분노의 외침처럼 들리는가 하면, 동시에 '제발 우리를 살려주시오!'라는 처절한 슬픔의 통곡으로 들렸다. 그는 어떤 감정이 진짜인지, 무엇을 치유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수천 개의 모순된 감정이 뒤섞인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는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은빛 꼬리는 혼란에 빠져 이리저리 허공을 헤집었고, 이내 힘없이 바닥으로 스러졌다.
미류가 환술을 펼치기 위해 꼬리를 흔드는 순간 , '파몽의 쇠사슬(破夢鎖)'이 뱀처럼 날아와 그녀의 아홉 꼬리를 옭아맸다. 쇠사슬이 꼬리에 감기는 순간, 미류의 영혼은 불길에 휩싸인 듯한 고통을 느꼈다. 쇠사슬은 단순히 물리적인 구속이 아니었다. 그것은 꿈의 길목을 차단하고, 그녀의 영혼을 악몽에 가두는 주술의 덩어리였다. 그녀의 눈앞에, 환상처럼 아름다웠던 자신의 모습이 순식간에 끔찍하게 늙고 추한 노파의 모습으로 변했다.
다른 구미호들 역시 속수무책이었다. 흑요석 부적의 기운은 그들의 감각을 둔하게 만들었고, 태석이 만든 주술 무기들은 그들의 힘을 교묘하게 봉쇄했다. 전쟁은 시작부터,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다.
하지만 구미호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주술 따위는 오직 힘으로 찢어발기는,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수호자가 있었다.
바로 가람이었다.
초기의 혼란 속에서, 동족들이 쓰러져가는 것을 본 그의 붉은 눈이, 마침내 분노로 폭발했다.
"어리석고 미천한 인간 놈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너희에게 남는 것은 파멸뿐이다!"
그의 포효는, 전장의 모든 함성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낙뢰와도 같았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병사들의 갑옷에 달린 흑요석 부적들을 비웃었다.
"고작 이런 돌멩이로, 나의 분노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더냐!"
가람은 자신의 영력을 폭발시켰다. 그의 몸에서 터져 나온 진홍빛 기운이, 주변의 흑요석 부적들을 먼지처럼 부수어버렸다. 영적인 족쇄에서 풀려난 그는, 이제 막 우리에서 풀려난 고대의 맹수였다.
그는 칼을 뽑지 않았다. 그의 몸 자체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그는 맨몸으로 인간들의 군진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그의 아홉 꼬리는, 강철 갑옷을 두부처럼 찢어발기는 아홉 개의 채찍이 되었고, 그의 날카로운 발톱은 방패를 종잇장처럼 구겨버렸다.
그의 포효 한 번에, 훈련된 병사들의 전열이 무너지고, 말들이 공포에 질려 날뛰었다.
가람은 혼자서, 수만의 군대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마치 붉은 혜성처럼 전장을 유린했다.
가람의 압도적인 분노는, 혼란에 빠졌던 다른 구미호들의 정신을 일깨우는 기폭제가 되었다.
"…모두 정신 차려라!"
피눈물을 흘리던 아란이, 흩어져 있던 동족들을 향해 외쳤다.
그녀의 아홉 은빛 꼬리가 하늘을 향해 뻗자, 전장에 흩어져 있던 구미호들의 영력이 그녀를 중심으로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미류가 환술을 펼치기 위해 꼬리를 흔드는 순간, '파몽의 쇠사슬(破夢鎖)'이 뱀처럼 날아와 그녀의 아홉 꼬리를 옭아맸다. 쇠사슬은 그녀의 꼬리를, 마치 살아있는 존재의 숨통을 조르듯 파고들었다. 미류의 아름다운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이 쇠사슬은 단순한 강철이 아니었다. 그것은 꿈의 길목을 차단하고, 그녀의 영혼을 악몽에 가두는 주술의 덩어리였다. 그녀의 눈앞에, 환상처럼 아름다웠던 자신의 모습이 순식간에 끔찍하게 늙고 추한 노파의 모습으로 변했다.
"크아아악!"
미류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꿈으로 통하는 길이 막힌 그녀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잃고 평범한 여우의 모습으로 땅에 쓰러졌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쇠사슬에 묶인 채, 그녀의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모든 힘을 끌어모아, 꼬리를 옭아맨 쇠사슬을 필사적으로 잡아당겼다. 쇠사슬이 살을 파고드는 고통에 그녀의 입술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미류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꼬리에서 맹렬한 붉은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쇠사슬은 그 압도적인 힘에 못 이겨 '우두둑' 소리를 내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쇠사슬은 산산조각 났다.
자유로워진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병사들을 향해 교활하고도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너희가 보고 싶었던 것이 지옥이라면, 기꺼이 보여주지." 그녀가 꼬리를 흔들자, 병사들의 눈앞에 끔찍한 환상이 펼쳐졌다. 방금 전까지 함께 싸우던 전우의 얼굴이, '진홍빛 역병'에 걸려 썩어 문드러진 시체의 얼굴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너희가 보고 싶었던 것이 지옥이라면, 기꺼이 보여주지."
그녀가 꼬리를 흔들자, 병사들의 눈앞에 끔찍한 환상이 펼쳐졌다. 방금 전까지 함께 싸우던 전우의 얼굴이, '진홍빛 역병'에 걸려 썩어 문드러진 시체의 얼굴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으아악! 괴물이다!“
"저리 가! 오지 마!“
인간들은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겁에 질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미류의 환술 하나가, 수천의 군대를 내부에서부터 붕괴시켰다.
다른 구미호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분노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한 구미호는 바람을 일으켜 화살의 방향을 되돌렸고, 다른 구미호는 땅을 울려 기마병들을 넘어뜨렸다.
구미호 일족은 수적으로는 열세였지만, 개개인의 힘은 인간을 압도했다.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인간들은 이제 사냥꾼이 아닌, 자신들의 이해를 넘어선 절대적인 힘 앞에 놓인 사냥감일 뿐이었다. 그들은 공포에 떨며 후퇴하기 시작했다.
제단의 가장 높은 곳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태석의 얼굴이, 처음으로 하얗게 질려갔다.
간(肝)의 저주: 붉은 비가 내리던 날
전세는 역전되었고, 인간들의 군대는 공포에 질려 후퇴하고 있었다. 제단 위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태석의 얼굴은, 분노와 굴욕으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자신의 완벽한 계획이, 저 하찮은 짐승들의 힘 앞에 무너지고 있었다.
'이대로…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그의 눈이 광기로 번뜩였다. 그는 후퇴하는 병사들을 향해, 저주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어리석은 것들! 두려워 마라! 저들의 힘의 근원은 신성함이 아니다! 바로 우리 인간의 생명력, 그 정수인 '간(肝)'에 대한 탐욕일 뿐이다!"
그는 '간'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병사들의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했다.
"저들은 우리의 정기를 탐하는 요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기로 저들을 벌하리라! 인류의 위대한 승리를 위해, 너희의 순수한 생명력을 나에게 다오! 내가 그것으로 저들을 멸할 궁극의 무기를 만들겠다!"
그의 외침은 광신적인 선동가의 그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가장 끔찍한 행동을 감행했다.
그는 '진홍빛 역병'으로 이미 제정신이 아닌 채, 자신을 향한 뒤틀린 사랑과 존경심에 휩싸여 있던 아내와 아들을 제단 위로 끌어올렸다.
"나의 가장 소중한 것부터, 인류를 위해 바치겠다! 보아라, 이것이 나의 대의다!"
그가 외치자, 역병으로 고통받던 그의 충성스러운 부하들과, 광기에 휩싸인 병사들 수십 명이 스스로 제단 위로 올라와 무릎을 꿇었다.
태석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미친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그는 금단의 주술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제물로 바쳐진 수십 명의 인간들의 심장에서, 붉고 영롱한 빛의 기운—물리적인 간이 아닌, 생명의 정기 그 자체인 '간기(肝氣)'—가 실처럼 뽑혀 나와, 태석의 손 위로 모여들었다.
그것은 수십 명의 삶과, 고통과, 분노가 응축된 핏빛 구슬로 변했다. 구슬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불길하게 '두근, 두근' 고동치고 있었다.
생명의 힘으로 빚어낸, 생명 자체를 저주하는 독(毒)이었다.
"마셔라! 이것이 인간의 분노다!"
태석이 핏빛 구슬을 하늘로 던져 터뜨리자, 그 독기는 비가 되어 전장 전체에 흩뿌려졌다.
구미호들에게, 그 붉은 비는 단순한 비가 아니었다.
순수하고 정제된 영력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영혼에, 수십 명의 혼탁하고 강렬한 인간의 생명력이 강제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과 같았다. 맑은 샘물에, 진한 피를 들이붓는 것과 같은 끔찍한 오염이었다.
다솜은 가장 먼저 그 변화를 느꼈다.
붉은 비 한 방울이 그의 은빛 털에 닿는 순간, 그의 영혼에 차가운 불꽃이 튀는 듯한 고통이 퍼져나갔다.
그의 주변에서, 부상당한 한 인간 병사가 신음하고 있었다. 다솜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사랑의 꼬리'를 뻗어 그를 치유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꼬리에서 흘러나온 것은, 따스한 장밋빛 치유의 빛이 아니었다.
붉은 독기에 오염된 그의 영력은, 시커멓고 부패한 '악취나는 검붉은 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 빛이 병사의 상처에 닿자,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오히려 빠른 속도로 썩어 들어가며 검게 변해갔다.
"으아아악!"
병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고, 다솜은 경악하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평생을 남을 살려온 자신의 손이, 이제는 닿는 모든 것을 죽이는 '저주의 손'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다른 구미호들도 마찬가지였다.
미류의 아름다운 환상은, 보는 이를 미치게 하는 끔찍한 악몽으로 변질되어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덮쳤다.
그리고,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그들의 영혼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걷잡을 수 없는 '갈증'이었다.
자신의 순수한 영력이 붉은 독에 의해 오염되고 중화되면서, 그들의 영혼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듯한 텅 빈 감각.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영혼의 허기.
그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단 하나뿐이라는 것을, 그들의 타락한 본능이 속삭이고 있었다.
바로, 이 저주의 근원이자 재료가 되었던, 순수한 인간의 생명력, '간기(肝氣)'.
"크아아아…! 기운이… 인간의 기운이 필요하다…!"
한 구미호 전사가,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이성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안돼, 이것은 함정이다!'
하지만, 그의 영혼을 태우는 갈증은 모든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는 마치 사막에서 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가장 가까이 있는 인간 병사를 향해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눈은 더 이상 지혜로운 영물의 눈이 아니었다. 굶주림에 미쳐버린, 붉고 탁한 짐승의 눈이었다.
그는 병사의 간을 먹으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 깃든, 가장 순수하고 강렬한 생명의 정기, '간기'를 흡수하여, 이 지옥 같은 갈증을 잠시라도 잊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포효하며 병사의 가슴에 손을 박아 넣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목격한 다른 인간 병사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변명의 여지없는 '식인(食人) 행위'로 보였다.
"저, 저놈이…! 사람의 간을…!"
"요괴다! 저놈들은 인간의 간을 빼먹는 요괴들이었어!"
공포는 순식간에 전염되었다.
그것이 신호탄이었다.
전장의 모든 구미호들이, 하나둘씩 끔찍한 갈증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이성을 잃은 채 동족에게 공격당하고, 자신들을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는 인간들의 시선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 절망하며 무너져 내렸다.
제단 위에서, 태석은 자신이 만들어낸 지옥도를 보며, 팔을 활짝 펼쳤다.
"보아라! 저것이 저들의 본모습이다! 저들은 인간의 간을 탐하는, 흉측하고 사악한 요괴들일 뿐이다!"
그의 외침은 예언이 아니었다. 그가 직접 만들어낸, 잔인한 현실이었다.
전장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미쳐버린 동족에게 공격당하고, 인간들의 눈에 요괴로 비치는 자신들의 모습에 절망하며, 구미호들은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구미호 일족의 비극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그들은 인간을 구원하려다, 인간의 손에 의해, 인간을 탐하는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엑소더스, 그리고 영원히 기록된 거짓말
"이제… 끝이다."
아란은 피눈물을 흘리며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수백의 동족은 죽거나, 이성을 잃고 날뛰고 있었다. 살아남은 것은 가람, 미류, 다솜을 포함한 스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우리가 졌다, 태석. 아니, 우리 모두가 졌다."
아란은 남은 모든 힘을 끌어모아, 하늘을 향해 아홉 꼬리를 뻗었다. 하늘이 찢어지며 신계로 통하는 불안정한 균열이 열렸다.
"살아남은 자들은 나를 따르라! 이 저주받은 땅을 떠난다!"
아란은 남은 이들을 이끌고 균열 속으로 몸을 던졌다. 사라지기 전, 그녀는 태석과 모든 인간을 향해 마지막 말을 남겼다.
"너희는 정원사를 몰아내고 잡초를 택했다. 언젠가 너희의 세상이 스스로 만들어낸 감정의 독초에 뒤덮여 질식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 너희는 오늘 흘린 우리의 눈물을 기억하게 되리라."
균열이 닫히고, 구미호들은 인간의 역사에서 사라졌다.
전쟁은 인간의 '승리'로 끝났다.
태석은 서라벌의 영웅이 되었고, 인류의 유일한 수호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저지른 짓이 무엇인지. 그는 자신의 끔찍한 행위를 정당화하고, 구미호라는 존재를 영원히 위협적인 존재로 각인시켜야만 했다.
그날 이후, 태석의 주도하에 역사는 다시 쓰였다.
모든 기록에서 '영혼의 정원사' 구미호의 이야기는 삭제되었다. 그 자리에는 '인간을 홀려 간을 빼먹는 아홉 꼬리 요괴'의 이야기가 채워졌다. 그들이 함께 세운 서라벌의 공(功)은 모두 태석의 것으로 돌아갔고, 구미호는 '잿빛 역병'을 퍼뜨린 원흉으로 기록되었다. '여우 사냥'은 인류를 구원한 위대한 성전(聖戰)으로 미화되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여우 인형을 안고 자지 않았다. 대신, 구미호 이야기는 아이를 울지 않게 만드는 무서운 옛이야기가 되었다.
수십 년 후, 늙고 병든 태석은 홀로 자신의 서재에서, 자신이 직접 왜곡한 역사서를 읽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는… 인류를 구한 것이 맞는가?"
그의 질문에 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균열 너머로 사라진 구미호들은 더 이상 인간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고, 세상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아란의 예언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스스로 만들어낸 감정의 탁기 속에, 서서히 잠식되어 가면서. 이젠 인간과 함께할 존재는 더 이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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